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이 즐겁기도 하다는 것은 행운이다.
프랑스 소르본대학 철학과 교수의 얘기입니다(미셸 퓌에슈,『먹다』, p.101)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게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먹는 게 즐겁다는 건 확실히 행운입니다. 다만 워낙 즐겁다 보니,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죠.
특히 먼 길 걸을 땐 고민이 많습니다. 잘 걸으려면 잘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배낭 무게를 생각하면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기왕 걷는 김에 로컬 맛집에도 가보고 싶지만, 자칫하면 동선과 일정이 꼬입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걷기 위해 먹는 걸까, 먹기 위해 걷는 걸까.’
‘섬’ 같은 한강공원 걸을 땐 편의점 컵라면이 최고
주말에 한강공원을 자주 걷습니다. 1박 2일, 2박 3일 여행 갈 형편이 안 될 때 서울에서 좀 멀리 걷는 코스로 딱이거든요.
보통 양천구에 있는 집을 기준으로 서쪽 김포로 가거나, 반대로 동쪽 반포까지 갑니다. 성산대교 넘어 동쪽으로 걷다가 잠수대교 건너 다시 서쪽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돈 적도 있습니다. 4회 차 때 소개한 ‘걸어서 한강 건너기’의 확장 버전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한강공원을 걸을 땐 주로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남북의 한강공원이 각각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에 포위돼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는 한강, 뒤에는 자동차전용도로. 띄엄띄엄 있는 나들목을 통해서만 들고 날 수 있죠. 그래서 한강공원은 섬 같습니다. 섬에서 멀리 떨어진 뭍으로 음식점 찾아가느니,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 먹는 게 시간 절약도 되고 편하더라고요.
컵라면은 언제부터 먹었을까요? 삼양식품이 국내 첫 용기면을 내놓은 게 1972년이었습니다. 일본 닛신식품의 세계 최초 용기면(상품명 ‘컵누들’) 출시 1년 뒤였습니다(김정현·한종수, 『라면의 재발견』, p.104). 그 용기면 이름이 바로 ‘컵라면’이었죠. 그러니까 컵라면은 원래 고유명사였다가 보통명사가 된 셈입니다. 스카치테이프나 호치키스·보톡스처럼요.
하지만 시판 초기에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삼양식품이 1976년 서울과 부산·대구· 인천·광주·대전 중심지에 국내 첫 자판기까지 설치하며 판촉에 나섰지만, 얼마 못 가 단종됐습니다.
재밌는 건 인기가 없었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