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교수의 광고로보는 통신역사]〈34〉태극기우표, 환란 속 의지와 고마움

2025-06-01

이메일이 등장하기 전 편지는 중요한 메시지 전송 수단이었고 편지를 부치기 위한 요금 납부 증표인 우표는 다양한 역사적 이야기를 품은 교육용 자료이자 많은 이들의 인기 으뜸인 수집 대상이기도 했다. 환란 속 독립 의지를 나타내준 태극기 우표도 그 중 하나다.

미국 우정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추축국(독일·이탈리아·일본)이 핍박(overrun)한 12개 국가에 대한 경의와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결의 차원에서 우표(1943)를 발행했다. 보라색 바탕 중앙에는 당사국 국기가, 좌·우측에 각기 억압에서 해방된 여성과 전설 속 불사조 피닉스로 광복을 염원했다. 디자인은 열렬한 우표 수집가였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무부가 제안한 후보군에서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다음 해에는 미국의 한국독립 지지를 재확인하는 태극기 우표도 발행됐다. 이는 분열된 미주 독립단체의 결속을 위해 하와이서 결성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1941)' 선전부장 전경무의 노력 덕이었다. 우정청 축하연에서는 이승만의 비서 이원순의 쌍둥이 딸의 우표 구매와 연설이 있었고 대표단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두루마리를 헌정했다.

지리적으로 조국과 근접한 상하이·만주가 물리력에 의존한 독립운동을 구사했다면, 미주는 자금 모금·지원과 우리의 처지를 만방에 알리는 외교에 집중했다. 달러 환율이 엔 대비 2배나 높아 모금 효과가 컸고 미국이 전쟁 중 패권국으로 부상한 배경이 있다. 해방 후 전경무·이원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IOC 가입으로 한국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유엔군 6.25 참전 기념' 우표는 서울 수복 직전인 1951년 9월 15일 우리 정부가 발행했다. 대상은 참전국 16개국과 의료지원 6개국(이탈리아와 북구 등)이다. 좌우로 해당 국기와 태극기가, 초록 바탕 우표 중앙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파란 바탕에는 유엔 로고와 비둘기가 자리 잡고 있다. 평화에 대한 염원과 우리를 위해 싸워준 우방국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낸다.

미국은 한미수호조약(1882)을 어기고 카스라 태프트 조약으로, 영국은 영일 2차 동맹(1905)으로 일본의 한국 병탈을 묵인했지만, 6·25 때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대규모 전략 자산과 인력을 투입했다. 중국의 참전으로, 북진 중 퇴각한 UN군의 재정비 시간을 벌어준 '임진강 전투'에서는 영국의 글로스터 부대가 큰 희생을 치렀고 '가평전투'에서는 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선전했다. 영원한 형제국 터키는 2만의 군인을, 소국 룩셈부르크는 참전을 위해 벨기에와 통합하여 파견했고 가깝게는 태국·필리핀, 멀리는 프랑스·네덜란드·콜롬비아·남아공·에티오피아도 파병했다. 연간 기준으로 190만의 연합군이 참전하고, 3100명 이상의 의료지원이 있었으며 3만7000명의 사상자를 포함해 부상·포로 등 피해는 15만을 넘었다.

매년 과거 환란과 광복을 기리며 한반도의 미래 안정을 다짐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를 성취하기 위해 벽돌처럼 하나하나 채워져 있던 사건은 잊히는 듯해 아쉽다. 우표 속 태극기를 소환함으로써 독립지사와 우방의 선혈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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