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에서 1·2번 타순은 ‘밥상을 차린다’는 의미로 ‘테이블세터’라 불린다. 전통적으로 타율, 출루율이 높고, 볼카운트 싸움과 주루플레이에 능한 선수들이 배치되는 자리다. 2번 타순에는 기동력이 좋은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옮길 수 있는 작전 수행 능력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야구에도 ‘트렌드’가 있다. 테이블세터에 팀 내 강타자들을 포진하는 실험이 꾸준히 이어진다. 타격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상위 타순에 강타자를 포진시켜야 한다는 어느 정도 상식적인 전략이다. 지난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정상에 오른 LA다저스도 오타니 쇼헤이-무키 베츠로 이어지는 MVP 출신 강타자 라인업으로 테이블세터를 꾸렸다.
KBO리그에서는 이강철 감독의 KT가 ‘강한 1번’을 즐겨 썼다. 이강철 감독은 지난 시즌 MVP 출신 멜 로하스 주니어를 1번 타순에 기용하며 재미를 봤다. 이번 시즌에는 더 나아가 토종 강타자인 강백호를 톱타자로 쓰며, 로하스를 뒤로 받치는 묵직한 ‘중심타선급’ 테이블세터진을 구성했다.
지난 10일 시범경기 키움전에서 그 화력을 엿볼 수 있었다. 1회말 첫 타자 강백호가 중월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로하스가 우월 선제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둘은 2회 공격에서도 볼넷과 우전안타로 찬스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도 ‘강력한 테이블세터’로 시즌 개막을 맞는다. 빈약한 공격력으로 고민을 안은 키움은 이번 시즌 외국인 타자를 2명으로 외국인 선수를 구성했고, 그 둘을 1·2번에 넣는 승부수를 준비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 타자로 활약한 바 있는 야시엘 푸이그는 3년 만에 키움으로 복귀해 톱타자로 나선다. 그리고 지난 시즌 삼성에서 뛰며 장타 능력을 인정받은 루벤 카디네스를 2번 타자로 기용한다.
푸이그는 10일 KT전에서 안타는 없었지만 세 차례 타석에서 2볼넷(1삼진 1득점)을 얻어냈다. 상대 투수들이 푸이그의 ‘한방’을 경계하며 신중한 투구를 하면서 기대했떤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카디네스는 3타수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여전히 전통적인 테이블세터 라인을 구성하는 팀들이 대다수다. 테이블세터에 소폭으로 변화를 준 팀들도 있다. 두산은 일본 연습경기부터 토종 거포 김재환을 2번 타자로 기용 중이다. 지난 시즌 2번 타순에 드러난 약점을 메우기 위한 선택이다. 두산 관계자는 “지난 시즌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에서 찬스가 2번 타순에 많이 걸렸는데, 우리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타자들이 많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두산은 지난 시즌 2번 타순 OPS(출루륭+장타율)가 0.696으로 가장 낮은 팀이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2번에 들어갈 ‘해결사’로 베테랑 김재환을 준비시켰다.
NC도 3번 타자로 기용하던 베테랑 손아섭을 10일 KIA전에 리드오프(1경기)로 쓰며 옵션을 점검했다. 1988년생으로 타율이나 출루율은 조금씩 하락세지만, 관록의 컨택 능력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선택이다. 손아섭은 시범경기 4경기에서 10타수6안타로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