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임원은 사장까지 돼야 한다. 임원 때는 본인의 역량을 모두 펼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사장이 되면 본인의 뜻과 역량을 다 펼칠 수 있다."(2011년 8월 23일,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여성 임원 오찬에서)
연말연시 인사에서 '최초' 타이틀 단 여성 리더들이 남성이 주류인 비즈니스 세계에서 '유리천장'을 깼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금융분야애에 이르기까지 여성 CEO(최고경영자)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유리천장(Glass-Ceiling)은 미국 경제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1986년 기고문에서 사용하면서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이 일정 직급에 오른 이후부터는 성 차별 등으로 인한 유리천장에 막혀 더 이상 고위직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용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가운데 직장 내 여성 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다. 지난해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29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9위를 기록했다. 2013년 첫 발표 이후 12년 연속 꼴찌다. 여성이 출세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뜻이다. 실제 정부·입법부·민간기업에서의 여성 관리자 비율(2022년 기준, 통계청 발표)은 14.6%로 OECD 평균(34.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통계청은 “관리자 비율에서 남녀 격차가 사라지기까지는 140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유리천장 깬 '첫 여성' CEO가 갖는 중요한 의미이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즐비하지만 못 넘을 산은 없다.
김경아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는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전문경영인 CEO다. 김 대표는 서울대 약학 학사·석사 과정을 마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독성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10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바이오 신약 개발 수석연구원으로 입사했다.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에 합류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 공정, 품질, 인허가 등 사업분야 전반을 거쳤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총 9종의 바이오시밀러가 허가를 받는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 의약품 개발 회사다.
이영란 동원CNS 대표는 동원그룹 최초 여성 CEO다. 동원CNS는 현장의 판매직원들을 밀착 관리하는 동원그룹 계열사다. 이 대표는 동원그룹의 ‘고졸 신화’로 불린다. 천안여상을 졸업한 1992년 동원산업에 입사해 고졸 출신 최초 여성 임원 등 '여성 최초' 기록을 써왔다. 2012년 동원F&B 인천유통2 지점장을 지냈고, 2018년 유통영업부장, 2023년 상무보 등을 거쳤다.
이민경 사장은 NH농협카드 최초의 여성 CEO다. 이 사장은 1967년생으로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졸업했고,1978년 NH농협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지점장, 외환지원센터장, 자산관리(WM)사업부장, 금융소비자보호 부문 부행장 등을 지냈다.
정현옥 우리신용정보 대표는 2019년 우리금융의 지주사 재출범 이후 첫 여성 CEO다. 정 대표는 1970년생 여성 리더다. 광주 조선대사대부여고와 호남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1992년 우리은행에 입행한 이래 강남영업본부장, 투자상품전략그룹 본부장, 금융소비자보호그룹 부행장을 역임했다.
이들 외에도 정유경 (주)신세계 회장은 삼성, 신세계, CJ, 한솔 등 범삼성가 3세 경영인 중 처음으로 여성 회장 자리에 올랐다. 한국 우유 가공업계 최초의 여성 CEO인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과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성래은 영원부역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범LG가 최초의 여성 CEO였던 구지은 아워홈 전 부회장 등은 주목 받는 '오너 출신' 여성 리더다.
LG그룹 최초 공채 출신 여성 대표인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와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에 이은 CJ그룹의 두 번째 어성 CEO인 이선영 CJ ENM 커머스부문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 포스코그룹 최초 여성 부사장 이유경 포스코 구매투자본부장, 함은경 JW중외제약 총괄사장, 최세라 예스24 대표, 안정은 11번가 대표, 조지은 라이나생명 사장, 모재경 라이나손해보험 사장, 서혜자 KB저축은행 대표, 김덕순 하나펀드서비스 대표 등은 대표적인 비오너 여성 경영인이다.
남성과 다른 여성 특유의 포용력과 협업 능력,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유연한 리더십이이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경제·산업계에 활력소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