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인공지능(AI)을 악용한 딥페이크(허위영상물) 성범죄 대응 대책을 내놨다.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에만 한정했던 위장수사를 성인으로 확대하고 검거 전이라도 범죄 수익을 몰수·추징하는 게 대책의 핵심이다.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트렸던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이 터진 지 5년이나 흘렀는데 이제서야 수사제도와 기법을 고치겠다니 뒷북대응이다.
정부가 위장·비공개수사와 선진 수사기법을 동원하겠다고 했지만 날로 지능화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2021년 이후 4년 만에 5배 이상 급증했고 대상도 유명인뿐 아니라 중·고교, 대학, 군 등 전방위로 퍼졌다. 하지만 딥페이크 영상 범죄가 디지털 공간에서 익명성을 무기로 벌어지다 보니 수사는 헛발질에 그치기 일쑤였다. 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만큼 온갖 신종범죄수법이 기승을 부릴 게 틀림없다. 정부는 수사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딥페이크 탐지 소프트웨어 고도화 등 대응력도 확 키워야 할 것이다.
늦게라도 범죄영상물의 온상인 텔레그램 등 플랫폼 규제를 강화한 건 다행이다.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 등 유통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시정명령과 과징금 및 제재를 받게 된다. 피해자가 삭제요청을 했을 경우 24시간 내 먼저 차단하고 그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접수된 불법 촬영물 삭제요청 94만건 가운데 26만건 이상이 그대로 있다. 피해자가 수백만원씩 내며 사설업체를 통해 지우는 일까지 벌어진다.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딥페이크 범죄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난 9월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만 해도 처벌하고 편집·유포 형량도 7년으로 강화됐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와 국회는 더 강력하고 실효적인 처벌이 가능하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딥페이크·가짜뉴스 등 부작용을 규제하는 근거가 되는 AI기본법 제정 등 법제 정비도 시급하다. 딥페이크가 중대범죄임을 인식시키는 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피의자·피해자 10명 중 7명 이상이 10대인 점에 유의해야 한다. 죄의식 없는 가해자들이 양산되면 범죄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다. 여성의 신체를 성적인 도구로 여기는 왜곡된 성 관념을 바로잡는 성교육과 사회적 인식변화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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