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워싱턴주에서 역대 가장 큰 산불이 발생한 가운데, 국경순찰대가 진화 작업에 투입된 소방관 2명을 체포해 논란이 됐다.
29일(현지시간) 미국 CNN·NBC 방송 등에 따르면 국경순찰대(USBP)는 전날 워싱턴주 올림픽 페닌슐라에서 발생한 산불 진압에 나선 민간 소방대원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멕시코 국적의 두 명에게서 여러 불일치 사항이 발견돼 이들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주에서 지난달 6일 발생한 산불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올림픽 페닌슐라에서 국유림 9000에이커(약 1100만평; 36km2)가 산불로 인해 소실된 상황이다. 워싱턴주 사상 가장 규모가 큰 산불이다.
한 달 넘게 산불이 이어지면서 수많은 소방 인력이 투입됐으며, 국토관리국(BLM)과 산림청과 계약을 맺은 민간 회사 인력도 다수다.
총 44명으로 구성된 민간 회사의 작업반은 지난 27일 쿠시먼 호수 인근의 불을 끄기 위해 집결했다. 작업반 가운데 20명이 멕시코인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취업 비자와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작업반이 집결한 곳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ICE 요원들은 작업반장에게 여러 서류를 요구하더니 두 명의 멕시코인에게서 여러 불일치가 발견됐다며 그들을 체포했다.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형사 수사가 종결됐으며, 해당 업체와 계약이 해지됐다고 알렸다.
작업반장인 데이비드 디아즈는 “지난주 워싱턴주에 도착해 마트에서 본 검은색 트럭이 보였다. 이 트럭은 철물점과 주유소까지 우리를 따라왔고, 가게에 있는 동안 바로 인근에서 유턴했다”며 ICE 요원들이 자신들을 미행했다고 주장했다.
당국은 “이번 계약 해지가 진화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협력으로 정부 운영의 청렴성을 보장하고 수탁 문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있어 연방 기관 간의 공조가 강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진화 작업이 13% 미만에 불과한 상황에서 무리한 이민 단속이 민간 업체의 참여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다기관적 접근이 가능하지만,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등 태평양 북서부 지역은 연방 소방관 부족으로 계약직 소방대에 대한 의존이 커지는 상황이다. 산불을 끄기 위해 모든 인력이 진화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단속이 인력 자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기에 들어서 이민 단속을 강화했다. 다만 학교나 교회, 자연재해 피해 지역에서는 이민 단속을 금지했으나, 민간 소방 인력이 체포되면서 금지 조치가 해지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워싱턴주 상원의원 패티 머레이는 이번 체포를 두고 “트럼프는 산림청을 파괴하고 수천 명의 필수 지원 인력을 강제로 파견하는 것부터 현장 소방관들을 구금하는 것까지 여러모로 우리의 산불 진화 능력을 약화시켰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일갈했다.
여론도 악화했다. 일각에서는 불법 체류 조직(갱단) 소탕에 난항을 겪자 일부러 신원 파악이 쉬운 외국인 근로자들을 노려 실적을 채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네티즌들은 “일하는 사람들이 법을 어길 확률이 높겠나, 갱단이 더 높겠나”, “단순히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위험한 불법체류자를 색출해라”, “거대한 화마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방인력을 의회가 합법적으로 데려오지 못한 탓”, “일부러 표적 수사한 것 아니냐” 같은 반응을 보였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