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태계 구축"···은행권, '생활 밀착형 동맹'으로 영토 늘린다

2025-11-03

정부의 생산적 금융 요구와 대출 규제 강화 속에서 은행권이 비금융과 손잡고 있다. 유통·홈쇼핑·회계법인·프랜차이즈 등 생활 밀착형 산업으로 손을 뻗으며 '생활 속 금융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단순한 제휴를 넘어 산업 데이터와 고객 접점을 결합하려는 전략이지만 수익성 검증과 리스크 관리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주요 은행들이 연달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금융이 산업의 인프라로 스며드는 '임베디드 금융'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KB금융그룹은 지난달 31일 현대백화점그룹과 '금융·유통 시너지 협력 모델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양종희 KB금융 회장과 장호진 현대지에프홀딩스 사장은 고자산층 고객을 겨냥한 '자산관리+소비' 통합 모델의 출발을 알렸다.

양사는 금융과 유통의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를 결합해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KB금융은 자산관리 전문 인력과 투자자문 역량을, 현대백화점은 고급 소비 네트워크를 내세워 '고객의 자산과 생활'을 동시에 관리하는 하이엔드형 플랫폼을 만든다. 전용 통장, 포인트 연계, 간편결제 등 결합형 상품 출시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공급망 금융 협력도 포함됐다.

하나은행은 NS홈쇼핑과 협력해 시니어 세대를 겨냥한 융합형 라이프케어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양사는 지난달 30일 '시니어 맞춤형 금융·쇼핑 결합 서비스' 업무협약을 맺고, 고령층 고객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과 멤버십 교차혜택을 설계하기로 했다.

이번 협약은 하나금융그룹의 시니어 특화 브랜드 '하나더넥스트' 출범 1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금융·소비·건강을 아우르는 종합 서비스 구축이 목표다. 하나은행은 은퇴설계와 상속·세무자문 콘텐츠를 제공하고, NS홈쇼핑은 고객 네트워크와 플랫폼을 활용해 고령층의 생활밀착 서비스를 강화한다.

산업과 금융의 경계 허물며 '생활 속 임베디드' 전환 가속

NH농협은행은 삼일회계법인·핑거와 손잡고 중소기업 경영지원에 나섰다. 지난달 30일 체결된 3자 협약의 핵심은 ERP 플랫폼에 은행의 금융 기능을 직접 심는 것이다. 삼일회계법인과 핑거가 공동 개발한 ERP '스텔라'와 '파로스'에 농협은행의 계좌조회·이체 기능을 탑재해 기업이 별도의 프로그램 없이 자금 흐름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달 개설 예정인 'NH법인·소호 성장동행센터'를 통해 회계·세무 자문과 금융지원을 통합 제공하고, 중소기업의 성장 단계별 맞춤형 서비스도 강화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프랜차이즈 본사 ㈜쿠우쿠우와 협약을 맺고 'BaaS형 수요자 금융'을 선보였다. 외식업 가맹점의 운영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구조로, 가맹본사의 예금을 담보로 은행이 대출 리스크를 분담하는 모델이다. 가맹점 매출·발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신용평가를 수행하고, 최대 5억원 규모의 창업자금 대출을 낮은 금리로 지원한다.

이 모델은 전통적 신용평가가 아닌 데이터 기반 '수요자 금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은행이 함께 리스크를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영업자의 금융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은행권이 생활·소비·플랫폼 기반의 외부 제휴에 속도를 내는 데는 '임베디드' 구조로의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베디드 금융은 지점 중심의 접근 대신 고객의 생활 동선 곳곳에 금융 서비스를 스며들게 해 새로운 접점을 만들고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유통, 모빌리티,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군과의 접점을 통해 금융을 사용자 경험의 일부로 재설계하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곽호경 삼정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와 같은 디지털 신기술의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금융의 디지털화와 비대면화, 플랫폼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금융회사는 자사의 강점과 연계되거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비금융사업자와의 제휴, 금융기술·AI 등의 활용을 제고할 수 있는 기술 기업과의 제휴 등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넓히는 전략이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도 은행권 협업 확산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금융회사의 역할이 부동산 담보대출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자금이 실물경제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주문해 왔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다양한 비금융 접점에서 수요를 발굴하고 새로운 금융 기회를 창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 정책과 디지털 변화가 만든 은행권의 생존 전략

은행권의 '생활 밀착형 동맹' 확대는 기존처럼 담보 기반 대출에 집중하기보다 창업·경영·소비 등 다양한 영역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시도로 읽힌다. 은행권 스스로 이자수익 중심의 낡은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협업 기류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협업 모델이 늘어날수록 또 다른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파트너사의 역량 차이나 데이터 공유 범위에 대한 불확실성은 서비스 확장의 제약 요인이 될 수 있고, 자칫 금융사가 비금융사의 브랜드나 플랫폼 전략에 종속될 위험도 있어서다. 특히 외부 데이터를 금융 의사결정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보안·법적 리스크도 나타날 수 있다.

이 같은 융합형 모델이 실제 수익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다. 다양한 산업군과 손잡고 생활 접점을 넓히는 것과 의미 있는 수익을 창출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객 혜택에 치중한 제휴 구조는 은행 입장에서 마케팅비만 늘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고객 접점 확대나 이미지 제고 차원의 효과가 크지만 결국 중요한 건 협업을 통해 얼마나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점"이라며 "외형 확장보다도 리스크 관리와 내부 실행력이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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