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재: 부유식 해상풍력 성공, 배후 제조 기지에 달렸다
1. 80GW 시장이 열린다, 부유체 제조 전용 단지 절실
2. 쿡스하펜, 독일과 유럽 해상풍력의 미래가 되다
3. 확장 시점 놓친 브레머하펜의 딜레마와 모색
4. 10년 도시계획으로 거듭난 해상풍력 허브 헐
5.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이익, 시민 기본소득으로

브레머하펜은 한때 독일 해상풍력의 선발주자이자 북해 해상풍력의 전진기지로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유명했지만,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날로 거대화하고 있는 풍력 장비와 부품을 다룰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항만 확장을 계획했지만, 브레머하펜 특유의 문제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
브레머하펜은 베저강 어귀의 독일 동안 항구 도시다. 말 그대로 브레멘의 항구라는 뜻이다. 브레멘주는 브레멘시와 브레머하펜 2개의 도시로 이뤄진 독일 연방에서 가장 작은 주다. 게다가 두 도시는 서로 떨어져 있다.
브레머하펜은 1827년 브레멘의 항구로 건설됐는데 하노버주로 넘어갔다가 1947년 브레멘 소속으로 복귀했다. 브레멘이 독일 해상무역의 지분을 유지하려고 브레멘항(51km 내륙쪽)을 보완하기 위해 취득한 것이 브레머하펜이다.
2차대전 중에는 독일 해군의 가장 중요한 북해 기지가 돼 연합군의 브레멘 폭격으로 도시의 79%가 파괴되기도 했다. 종전 후에는 영국군 점령지에서 유일하게 미군 주둔지가 됐다. 미군 라디오/TV 방송국을 48년간 운영했고, 1993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미군기지는 독일 정부에 반환됐다.
1947년 행정적으로 베저뮌데에서 브레머하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브레멘주는 브레멘과 브레머하펜 두 도시로 이뤄진 초미니 주다. 브레멘시가 ‘항구’를 소유하고 나머지 부분은 브레머하펜시가 소유하는 등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데 양 도시 간 협약으로 브레머하펜이 브레멘 소유지까지 행정을 담당하는 기묘한 구조가 됐다.
산업적으로는 독일과 유럽 최대 냉동식품 회사인 프로스타 AG, 유럽 최대 생선 레스토랑 체인인 노르트제(북해), 유럽 최대의 차량운송 업체인 BLG 물류 등이 브레머하펜에 본사를 두고 있다.
브레머하펜은 작은 항구 도시지만, 독일 북해 연안의 항구 도시 중에서는 최대 도시(인구 11만4000명)다. 브레머하펜 항구는 도시의 자랑이다. 브레머하펜항은 세계 16위, 유럽 4위의 컨테이너항을 자랑한다. 2007년 490만TEU, 2015년 550만TEU 처리로 유명하다. 베저강에 접한 부두에서 200만 대 차량의 수출입 상‧하역을 담당하며, 유럽 최대의 차량 수출입항이다. 특히 중량화물 100만 톤을 처리할 수 있다.
베저강 어귀에 자리한 브레멘하펜은 항만과 해양산업(조선, 엔지니어링, 철강과 플랜트 건설)의 중심지이며,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육상으로 철도 외에도 A27 고속도로, B6와 B71 국도와 연결되는 지리적 요충지의 장점을 갖고 있다.
브레머하펜의 ‘빌헬름 카이저’ 컨테이너 터미널은 유럽 4위의 컨테이너항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접항 거리를 자랑한다. 또한 독일 제1의 차량운송 항만으로 연간 200만 대 이상의 수출입을 담당하며, 200만㎡의 면적을 이용해 차량의 입출고를 관리하고 있다. 터미널의 크레인은 크고 무거운 화물을 거뜬히 처리한다.
2001년부터 브레머하펜은 해상풍력에 초점을 맞춘 재생에너지원의 핵으로 발전했다. 지리적 위치와 산업적 기반 시설을 활용해 독일 북해 해상풍력의 기지가 됐다. 2010년 이미 연간 200기의 풍력터빈을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갖췄다. 독일 정부는 2040년 북해에 4500기의 풍력터빈을 설치하고 30GW의 전력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브레머하펜은 깊은 수심의 유리한 입지, 잘 갖춰진 인프라, 관련 산업 클러스터의 발전 등으로 유럽 해상풍력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아레바 윈드, RE파워 시스템, 베저윈드, 파워블레이드 등 주요 기업이 입주해 활동하는 것은 큰 강점이다. 그밖에 브레멘주 정부가 연구개발 부문에 수백만 유로를 과감하게 투자해 연구개발 클러스터를 구축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2009년 보르쿰섬 북쪽 45km 지점, 수심 30미터 해상에 독일 최초의 해상풍력 단지인 ‘알파 벤투스’가 완성됐다. EWE, E.ON, 파텐팔 등의 공동 프로젝트로 추진됐고, 이는 브레머하펜의 작품이었다. 이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기반해 브레머하펜의 해상풍력은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해상풍력 산업은 1000명 이상 고용을 창출했고, 브레머하펜은 연간 100기의 해상풍력 터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브레머하펜은 잘 발달된 해상풍력 클러스터를 갖추고, 관련 시설과 장비 생산업체뿐 아니라 서비스 업체까지 가치사슬의 모든 수준에서 산업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과 독일의 해상풍력 확장 속도를 고려하면 브레머하펜 해상풍력 터미널(OTB) 건설을 통한 인프라 확대가 필수적이었다.
해상풍력의 선도적 기업들이 입주해 있고, OTB 건설과 200헥타르(ha)의 배후기지 확장계획이 실현되면 브레머하펜이 북해와 유럽 해상풍력의 중심지로 성장할 가능성에 크게 기대를 걸었다.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시작할 계획이었다. OTB가 건설되면 북해의 3~4개 항구와 경쟁하면서 연간 설치하는 300기의 터빈 가운데 100~150기를 브레머하펜에서 생산해 설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행정의 난맥상과 환경문제가 브레머하펜 OTB의 발목을 잡았다. 라브라도하펜이 내항이어서 대형 설비 취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OTB 건설을 추진했지만, OTB 계획부지는 자연보호 지역이었다. 브레머하펜시 정부는 환경단체와 부딪히면서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후부지 역시 상당한 면적이 자연보호 지역이었고 축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레멘주 정부와 브레머하펜시 정부 사이의 소유권과 관할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한몫했다.
그 결과 OTB 건설은 아직도 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원래 브레머하펜에 신규 공장건설을 계획했던 지멘스가메사가 터빈공장을 쿡스하펜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넓은 항만시설과 배후부지를 갖고 있던 쿡스하펜이 독일 해상풍력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
브레머하펜의 고민과 미래
브레머하펜 해상풍력 산업의 입지는 항만 북쪽의 제1 컨테이너 터미널(길이 500m, 12.6m), 그와 인접한 ABC-할빈젤 해상터미널(길이 900m, 10.5m), 과거에 어항이었던 라브라도르하펜(길이 1132m, 7.6m)으로 나뉘어 있다. 북쪽 항만은 주로 연구개발 업체들이 집중돼 있고, 남쪽 항만은 제조‧설비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브레머하펜시 정부는 2010년대부터 라브라도르하펜을 새로운 해상풍력 인프라 기지로 확장하기 위해 OTB 건설을 계획했다. 새 부두의 설치와 더불어 라브라도르하펜 뒤쪽에 200ha 규모의 배후기지 건설도 추가로 계획했다.
브레머하펜은 독일 해상풍력의 선발주자로서 강력한 가치사슬과 기반 시설이 있다. 독일 최대의 컨테이너항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브레머하펜의 고민은 깊다. 날로 성장하는 북해의 해상풍력 산업을 이끌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확장성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해상풍력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터빈과 타워, 블레이드 등의 크기가 커지고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대규모 항만시설과 배후기지 확장은 생사의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2014년 새로운 터미널(OTB) 건설을 계획했지만 행정의 난맥상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계획이 지연되면서 중요한 발전의 기회를 잃었다. 그 결과 지멘스가메사가 대규모 터빈공장 투자 계획을 취소하고 결국 쿡스하펜에 공장을 세웠다. 브레머하펜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그러나 브레머하펜은 여전히 쿡스하펜에는 없는 강력한 해상풍력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당분간 독일 해상풍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북해와 독일 해상풍력은 300GW라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단 하나의 항구만으로 거대한 목표를 완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
[인터뷰] 자키아 그라이너와 미하엘 무르크 박사

6월 4일 브레머하펜 투자 촉진 및 도시개발협회(BIS) 간부들을 만났다. 자키아 그라이너(환경테크닉 엔지니어) 박사와 미하엘 무르크(혁신 매니저) 박사가 브레머하펜의 해상풍력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브레머하펜의 풍력산업 역사에 대해 말해 달라.
20년 전에 독일 최초의 해상풍력 프로토타입이 브레머하펜에서 만들어졌다. 브레머하펜의 풍력산업은 10~15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며 독일 해상풍력을 선도했다. 2013년까지 해상풍력의 기본 인프라가 갖춰졌고, 이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해상풍력에서 브레머하펜의 강점은?
많은 기업이 브레머하펜에 입주해서 파운데이션부터 트라이포드까지 다양한 풍력 부품을 생산한다. 블레이드 생산공장도 있다. 북쪽은 컨테이너 터미널의 일부와 내항을 이용해 풍력터빈과 블레이드를 조립해 해상풍력단지로 수송하고, 잭업(설치) 선박의 기지로도 활용된다. 북항 뒤편에 많은 해상풍력 전문기업과 R&D 연구소들이 있다.
-항만 인프라의 확장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계획단계에 있는데, 우선 OTB 계획이 확정돼야 한다. 초기 설계 이후에 상황이 변하면서 계획이 여러 차례 수정됐다. 왜냐하면 계획하고 있는 해상풍력 터미널이 자연보호구역 내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 계획이 확정되지 않아 안타깝다.
-남쪽 항만의 상황은?
남쪽 라브라도르하펜은 해상풍력 관련 업체들이 집중돼 있다. 과거 수산업 중심의 어항이었지만, 수산업 쇠퇴 이후 해상풍력 기반 항구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새로운 터미널 건설 계획과 함께 배후 산업기지 건설이 동시에 추진됐다. 처음에는 200ha의 면적에 배후 공단과 물류단지를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터미널 건설이 지연되면서 이 계획 역시 지연되고 있다. 역시 자연보호구역과 인접해서 원래 계획보다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브레머하펜의 미래는?
지금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미래는 낙관한다. 새로운 터미널 건설이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현재 몇 가지 기술적, 정치적 어려움이 있지만, 해상풍력의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만큼 독일의 북해 해상풍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죈케 알레르스 사민당 시의원, 원내대표

같은 날 독일사회민주당(SPD) 지역 당사에서 죈케 알레르스 시의원을 만났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지역 토박이로서 브레머하펜의 산증인이었고, 유쾌하게 브레머하펜의 역사를 입담으로 풀어냈다.
-브레머하펜의 해상풍력에 대해 말해 달라.
먼저 브레멘하펜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브레머하펜는 200년이란 짧은 역사에 비해 복잡하기 때문이다. 200년 전에 당시 한자동맹 소속 도시국가인 브레멘이 포화상태에 이른 브레멘항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항구를 구한 것이 브레머하펜이다. 그래서 독특한 역사를 갖게 됐다.
브레멘주는 브레멘과 브레머하펜, 두 도시로 이뤄진 독일에서 가장 작은 주(Land)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브레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브레머하펜은 브레멘의 외지 식민지 같은 처지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파생한다. 작은 도시라서 행정구역상 변동이 심했는데 1968년 이후 브레멘으로 최종 편입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2차대전 패전 이후에도 브레머하펜은 원래 영국군 점령지에 속했는데, 미군이 요구해서 미군의 주요한 수송기지가 됐다. 한때 6000명까지 주둔했지만, 독일 통일 이후 지금은 역사가 됐다.
-브레머하펜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브레머하펜은 번성한 항구 도시였다. 수산업이 발전했을 때 남항이 크게 성장해 수백 척 어선의 기항지였고, 항구에는 수산물 처리 공장이 많이 집중돼 있었다. 브레머하펜에서 생산한 수산물을 독일 전국으로 보냈다.
또한 독일 최대의 물류항이다. 북쪽의 컨테이너 항은 함부르크와 함께 해상 물류의 중심지다. 컨테이너 항은 5.2km 길이의 하역 부두를 갖추고 있고, 연간 400~500만 개 컨테이너를 취급한다. 차량도 120~180만 대를 수출한다. 벤츠와 BMW 차량 주차 공간도 있는 대규모 항구다.
-브레머하펜의 해상풍력은?
2000년 초반 남항에 해상풍력 기업들을 유치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했다. 2010년대에 브레머하펜은 덴마크의 에스비에르, 네덜란드의 에이모이덴 등과 더불어 북해 3대 해상풍력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터미널 확장에서 문제가 생겼다. 해상풍력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지만, 베를린은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른다. 사실 베를린의 많은 독일인도 브레머하펜이 브레멘에 붙어 있는 줄 안다.(웃음)
거기에 브레머하펜의 복잡한 역사 때문에, 우여곡절을 거쳐 브레머하펜시 정부가 항만을 관리하게 됐지만, 일부 항구는 아직 브레멘주 정부 관할이어서 행정적으로 복잡하다. 이 경우 브레머하펜은 재정적 결정권이 없다.
역사적으로 수산업에서 조선업, 또 해상풍력으로 산업이 전환되는 시기마다 브레머하펜은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를 봤다. 소도시 항구의 비애라고나 할까? 해상풍력 터미널도 같은 사례다. 행정상의 난맥상과 정치적 결정의 지연으로 중요한 산업적 기회를 놓쳤다. 환경단체들의 반대도 지연 요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브레머하펜은 전문성을 가진 노동자들이 있고, 해상풍력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다. 지금 어려움은 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려움을 헤쳐 나갈 것이다.
이종호 기자
통역: 원영수 국제포럼 운영위원
도움: 볼프강 폼렌, 환경문제 전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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