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의 반격

2024-09-24

한문 배우기의 기초교재인 천자문 중 ‘한래서왕(寒來暑往)’에 따라 지난 여름을 장식한 역대급 무더위도 추분을 지나니 이제는 끝을 보이길 기대한다. 높은 온도가 지속되다 보니 곤충들의 발육이 왕성하여 10여년만에 벼멸구 피해도 많이 발생했고, 말벌 퇴치에 대한 기사도 많았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외래해충인 등 검은말벌에 의한 양봉농가의 피해가 매년 1750억원에 이르며, 최근 소방대원들의 출동 사유 중 상당수가 본연의 임무인 화재 진압이 아닌 말벌집 제거라는데, 전북특별자치도에서만도 연 1만회에 달하고, 지난 8월에만 약 3천건이라 한다. 이에 따라 보다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말벌집을 제거하는 기술 개발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사실 벌은 인간에게 꿀을 주는 것 외에도 대부분의 작물들이 열매 맺게 도와주는 등의 공익적 가치가 잘 알려져 있어서 어린이용 만화영화에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 친숙한 곤충이다. 하지만 장미에도 가시가 있듯이 침에 쏘이면 통증을 유발하고 심하면 사망까지도 일으킨 사례도 많아서 모기 다음으로 위험한 곤충이기도 하다. 특히 말벌은 크기와 형태가 위압적인데다가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번갈아 채색되어 두려움을 주고, 육식성인 애벌레 양육용 먹이 사냥을 위해 꿀벌 양봉장에 나타나면 엄청난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즉시 제거 대상으로 지목된다. 사실 말벌에게도 육아를 위해서 해충을 포식하는 등 생태계에서 담당하는 엄연한 역할이 있는데, 인간이 생활환경을 넓히면서 그들의 서식공간을 침범하게 되고, ‘해충’의 누명을 씌워 집을 철거하고 밖으로 내쫓으니 말벌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크다.

그동안 말벌집을 제거하려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자연스레 흐르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우주복같은 두꺼운 방호복을 껴입고 몸을 지탱하기도 어려운 위험한 공간에서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한 경우에는 지상 60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 등 도저히 작업할 수 없는 공간에 부착된 경우도 있어서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보다 안전하게 말벌집을 제거하려고 수행 중인 여러 연구들 중 하나가 드론을 이용한 말벌집파괴 방법이다.

현재 개발된 드론 이용기술을 요약하면, 말벌집에 도착한 드론에서 먼저 레이저를 통해 목표를 조준한 뒤 친환경 옥수수탄을 쏴서 말벌집에 구멍을 낸다. 이후 드론 앞부분에 달린 대롱 끝의 노즐에서 말벌집으로 살충제 약액을 살포하여 집 내부의 여왕벌을 비롯한 성충들과 발육 중인 유충을 죽이는 방법이다. 집 밖에 나갔던 성충들은 오염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왕벌이 없으니 자연스레 사멸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여태까지는 제거하기 어려웠던 공간의 말벌집까지 조종기를 이용하여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며, 소방대원에게 연락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한 것으로 기대된다. 말벌집 탐색법 등 아직 부족한 점들은 계속 보완해서 현장에 보될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단순한 의미에서 천적이란 먹이사슬에서 잡아먹히는 생물(피식자)에 상대하여 잡아먹는 생물(포식자)을 이르는 말이다. 애벌레를 키우는데 단백질 먹이가 필요한 말벌에게 꿀벌은 손쉽고도 풍부한 먹이일 뿐이므로 말벌은 꿀벌의 천적이라 할 수 있다. 천적을 상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태까지 꿀벌이 대항하는 방법이라고는 말벌의 몸마디 사이에 침을 넣어 쏘거나 집단으로 달려들어 말벌에 뭉쳐서 온도를 높여 죽이는 방법 정도일 뿐이지만 희생이 너무 컸다.

꿀벌 개체군에서 처녀 여왕벌과의 교미 외에는 역할이 없어 ‘식충이’로 천대받는 수벌들의 영어 이름이 바로 드론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설명했는데,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주위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살아가므로 또 다른 형태의 소리 없는 도전과 응전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둥지를 습격당해도 꼼짝 없이 당하기만 하던 꿀벌 집단이 이제는 ‘드론’을 통해 당당하게 말벌에 반격하는 시대가 왔으니 세상은 참 오묘하기만 하다.

최준열 전북도농업기술원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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