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벨 벤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5-27

1968년 8월 공산주의 국가 체코에서 극작가로 일하던 32세 청년 바츨라프 하벨은 소련(현 러시아) 군대의 탱크가 프라하 시내에 진입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해 봄 집권한 알렉산데르 둡체크 공산당 제1서기가 단행한 일련의 반(反)공산주의적 개혁 조치에 불만을 품은 소련이 체코를 전격 침공한 것이다. 순식간에 프라하를 비롯해 체코 국토 전역을 장악한 소련군은 둡체크 등 개혁파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둡체크를 적극 지지하며 반공·반소련 성향을 드러낸 하벨도 작품 활동을 금지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체코 국민에게 한 줄기 희망을 선사한 ‘프라하의 봄’은 그렇게 짧게 끝나고 말았다.

하벨은 외딴 시골 마을의 맥주 공장으로 보내졌다. 평생 글만 써온 백면서생이 느닷없이 육체 노동자가 된 것이다. 중국 문화 대혁명 시기에 빗대면 하방(下放)을 당한 셈이다. 그래도 하벨의 반체제 운동은 계속됐다. 1975년 당시 대통령 앞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낸 행동이 대표적이다. 그 무렵 하벨은 체코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부상해 있었다. 1977년에는 그가 기초한 이른바 ‘77헌장’이 발표됐다. 이 또한 사상과 종교의 자유 확대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체코 당국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하벨은 결국 1979년 구속돼 1983년까지 수감 생활을 했다.

동서 냉전이 막바지에 이른 1989년 체코는 시민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를 내던지고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났다. 하벨이 주도한 이 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기존 체제를 타도했다는 뜻에서 ‘벨벳 혁명’으로 불린다. 체코 초대 대통령이 된 하벨은 2003년까지 재직하며 자유민주주의 기틀을 튼튼히 다졌다. 그의 임기 도중인 1990년 한국과 체코의 수교가 이뤄졌다. 대통령 퇴임 이듬해인 2004년 서울평화상문화재단은 하벨에게 제7회 서울평화상을 수여했다. 재단은 “공산 정권 시절부터 동유럽 민주화의 기수로 이름을 떨쳤고, 시민 혁명을 통해 체코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수상 이유를 밝혔다.

서울 서초구가 26일 양재천 인근에 일명 ‘바츨라프 하벨 벤치’를 조성해 대중에 공개했다. 하벨의 이름을 딴 이 시설물은 미국, 프랑스 등 세계 18개국에 설치돼 있다. 원형 테이블을 관통해 ‘대화의 뿌리’를 내린 나무를 중심으로 의자 두 개를 배치한 형태는 개방성과 민주주의를 뜻한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마침 올해는 두 나라가 외교 관계를 수립한 지 35주년이 되는 해다. 체코는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며 한국 기업을 원전 수주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벨 벤치가 양국의 영원한 우정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남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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