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다음 소희>는 중국에서 정식 개봉한 적 없다. 2017년 전주 콜센터 현장 실습생의 자살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지난해 2월 칸 영화제에서 소개됐으며 중국에서도 어느 작은 영화제에 초청받아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밖에 OTT 등을 통해 본 관객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영화 플랫폼 더우반에는 4만 건 넘는 <다음 소희> 리뷰가 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 4월 유명 관광지인 후난성 장자제 호수에서 남녀 4명이 함께 투신자살한 사건을 떠올렸다는 소감을 남겼다. 자살한 이들은 모두 농민공 2세들이다. 대를 이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가난한 삶, 실패자라는 낙인에 절망했다고 전해진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 고발한 ‘실습생 착취’가 모처럼 중국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계기는 끔찍한 무차별 흉기살인 사건이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6시 30분 장쑤성 이싱시 우시공예직업기술학교에서 쉬모씨(21)가 흉기를 휘둘러 8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중국에서 최근 몇 달 동안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공격 사건이 자주 보고되는 가운데서도 이 사건은 심상치 않다. 온라인에 유서를 공개하고 범행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올라온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된 유서에는 실습생으로서 극심한 노동착취를 겪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장이 임금을 체불하고 보험과 추가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벌금을 물린다” “하루 16시간 동안 일했다” “병가를 내겠다고 하니 책임자가 ‘다른 사람은 열이 나고 코피를 흘리면서도 일하는데 무슨 핑계로 못 한다고 하느냐. 못 하겠으면 꺼져라’고 말했다”는 내용 등이다.
유서는 심지어 “나는 죽어 다시는 착취당하고 싶지 않다. 노동자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 내 죽음이 노동법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담았다.
어떤 이유에서도 사람을 해한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중국 온라인에서도 “착취를 당했다면서 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무고한 사람을 해치느냐”고 비판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직업학교 실습생 처우에 관해서는 ‘과장됐다’는 의견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직업학교 실습생의 처우 자체는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눈에 띈다.
한 네티즌은 SNS에 실습 제도의 문제점으로 기업이 학생들의 임금을 학교에 맡긴다는 점을 들었다. 그의 경험담에 따르면 기업이 학교에 4000위안(약76만원)을 지급하면 학교가 교통비 명목으로 학생에게 500위안(약9만원)을 떼 준다. 실습생을 저임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학교와 기업이 결탁하는 것이다.
교육 컨설턴트인 슝빙치 중국21세기교육연구소장은 중국의 직업학교는 학생을 기업에 ‘값싸게’ 중개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취업률 등의 지표를 위해 학교는 실습생 착취를 묵인한다. 나아가 중국 정부는 직업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사회는 직업교육을 열등한 것으로 취급한다고 전했다. 중학교에서는 성적 하위 50%에 해당하면 직업학교로 진학시키는데 이렇게 시작된 ‘실패자’라는 낙인이 실습 중에도, 졸업 후에도 노동 현장에서 적용된다.
축적된 불만이 자살로 때로는 무차별 살인 범죄로 터져 나오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개적 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 경찰은 후속 수사 내용을 발표하지 않으며, 중국 관영매체에서는 해당 사건을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다. 마치 하나의 불씨가 온 들판을 태울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사건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들판 아래는 이미 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특히 매번 학교가 출구를 못 찾은 분노가 잘못 가 닿는 장소가 된다는 점이 더욱더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