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雷軍·1969년생), 중국 국방부장 둥쥔(董軍·1961년생), SF소설 <삼체>의 편집자 야오하이쥔(姚海軍·1966년생)의 이름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군사 군(軍)자가 들어간다.
1960년대생 중국 남성 가운데 이름이 ‘군’인 사람은 흔하다. 중국인 지인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그 시절 다들 군을 좋아했거든”이란 답이 돌아왔다. 항일전쟁에 승리하고 혁명을 해낸 군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9월3일 전승절은 중국에서 군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아울러 80주년을 맞은 올해 전승절에는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중국의 관점에서 새로 쓰겠다는 야심이 두드러져 보인다.
전승절의 공식 명칭은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전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일’이다. 인민 항일전쟁은 중·일전쟁, 전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말한다.
항일전쟁의 또 다른 이름은 ‘14년 전쟁’이다.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때만 해도 중국 학계에서 항일전쟁을 ‘8년 전쟁’이라고 불렸다. 전쟁은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촉발돼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14년 전쟁이라는 개념에서 전쟁의 기원은 1931년 만주사변으로 앞당겨진다.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훨씬 전부터 중국 인민은 파시스트 세력과 싸웠고 그러므로 전후 세계질서에 더 많은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산당 세력이 주축이 된 동북 지방 항일활동에도 역사적 무게감이 실린다.
전승절을 앞둔 한 달여간 중국 극장가에는 항일영화 외 작품이 거의 걸리지 않는다. 당국이 지시한 결과다. 난징대학살을 배경으로 한 <난징사진관>이 가장 호평받으며 흥행했다. ‘유럽 중심 세계관’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의 전쟁과 식민지배 상흔이 경시됐고 일본 전범에 대한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분노가 반영돼 있다.
공산당의 항일활동을 강조하면서 국민당의 항일활동은 지워지는 추세다. 루거우차오 인근 인민항일전쟁기념관 기념 전시에서도 중화민국 정부의 항일활동은 주어 없이 뭉뚱그려져 표현된다. 애초 9월3일이 전승절이 된 이유는 일본 지나파견군 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가 중화민국 국민혁명군 참모총장 허잉친에게 항복문서를 제출한 날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획일적 해석을 요구하는 경향은 더 강화된다고 느낀다. 훗날 조선족이 된 식민지 조선인은 중화민족의 일원으로서 항일운동에 동참했다는 점이 강조되는 추세다. 2009년작 영화 <난징!난징!>은 명령에 괴로워하는 일본군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대중의 큰 비난을 받았다. 국가 바깥의 시선에서 전쟁을 살피는 일은 그때보다도 더 어렵다는 토로가 나온다.

창안제 인근에 사는 한 젊은이는 “전승절 행사를 잘 치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전승절 예행연습으로 인한 통제에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난징사진관>을 보려고 했지만 관영매체가 영화와 관련해 ‘청년의 역사적 사명감’을 언급하니 김이 빠졌다”고 전했다. 현지인도 때때로 선전이 위대함을 반감시킨다고 생각한다.
중국 전승절 80주년, ‘인민’과 나란히 호명되는 ‘전 세계’의 외국인들이 기념행사를 보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는 평화롭고 대안적일 수 있는가. 역사문제에 공감하지만 극장가 풍경 등에는 약간의 공포감이 든다. 베이징의 체코, 폴란드대사관에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