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제작, 무엇보다도 배급과 상영
영화를 제작할 땐 사전작업 단계에서 시나리오 걱정, 배우 걱정, 기타 등등 걱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투자 걱정. 감독이 가장 거만하기 짝이 없는 때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아이디어가 즐겁고, 그 모든 걸 영상에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투자에 부닥칠 때마다 감독은 본인의 많은 것을 깎아내지만 그래도 자신이 있다. 투자사와 제작사는 사람이 적고 상대해 줄 프로듀서나 제작자가 있어서 손익을 주로 계산하는 차원으로부터 예술인으로서의 체면을 대체로 보호받는 편이다. 반면 스태프와 배우는 머릿수가 훨씬 많아서 감독은 아우라에 둘러싸인다. 말하자면 빨간펜을 그려대는 사람보다 ‘우쭈쭈’ 해주는 사람이 더 많아서 자만심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크든 작든 영화 작업을 많이 해본 자들은 ‘우쭈쭈’를 잘 믿지 않는다. 실패를 해본 자의 깨달음 같은 것이다. 영화인 가운데 실패를 해보지 않은 자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제작이 들어가면 작품 외엔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촬영이 종료될 때부터 감독은 자신과 고통스럽게 싸우기 시작한다. 그 싸움이 작품의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한 영화예술 내적 대체로 다행인 편이다. 촬영본과 순서편집본에서 자신의 숭숭 뚫린 구멍들이 보일라치면 감독은 위축되기 시작한다. 물론 그 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들도 왕왕 있다. 간이 크거나, 간이 없거나.
어쨌든 영화가 만들어지면 걱정은 다시 시작된다. 유통과 배급, 그리고 상영이다. 대형 스크린에서 본인 영화가 상영될 때 얼마나 벅찬지 영화인이 아니라면, 스크린에서 보이는 실제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조수일 때도 현장에서 즐거웠고 괴로웠고 기뻤고 슬펐던 엄청난 감정의 결들이 질서 없이 뒤섞여 마구 몰려온다. 애착이 가서 보고 또 보는 장면들도 있다. 영화인만이 누릴 수 있는 이 행운들이 가능하기 위해 영화는 스크린에 걸려야 하고, 스크린에 걸렸다가 더 많은 창구로 퍼져나가려면 배급과 유통이 결정되어야 한다.
12월 말에 다큐멘터리 <(가제)반구대별곡>의 시사회가 있다. 일반 대중에 공개할 수 없다. 영화제에 내보내려면 상영 기록이 없어야 한다. 애초부터 스태프와 관련자 중심으로 기술 시사만 진행하기로 했다. 기술 시사란 촬영, 편집 등에서 기술적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고, VIP 시사는 배우, 감독, 평론가, 기자 등 일명 ‘인플루언서’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흔히 ‘시사회’로 알려진 일반 시사가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시사회이다. 기술 시사는 내부자들을 대상으로 엄격하게 통제하는 편이다. 그래서 <반구대별곡>은 상영관과 통제가 가능한 시간대로 계약을 맺었다.
주중 투자배급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리허설 이후 프로듀서가 본인 작품으로 배급사 대표를 만나게 됐는데 보는 김에 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함께 얘기하겠다고 했다. 몇 가지 서류를 보내달라고 했고, 없는 시간 쪼개어 나름대로 열심히 정리해서 보냈다. 다큐멘터리는 기획안과 취재록을 보냈고, 극영화는 기획안과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중간 생략, 중간 생략.
매우 빠르게, 매우 좋은 조건으로 두 작품 모두 계약하게 되었다. (신문이 배송됐을 땐 계약서가 내 손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첫째, 성실하고, 둘째, 이전 내 작품들은 설득력이 있으며, 셋째, 여러 가지 종합적인 판단을 한 결과 괜찮은 영화가 나올 거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 배급사는 극장, 방송, OTT, 영화제 등의 배급을 총괄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영화사 가운데 하나다. 극영화는 제작에 들어가는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며 배급을 기획하기로 했지만, 다큐멘터리는 국내에 모두 깔겠다고 했다. 됐다! 됐다!
오래전 매우 유명한 감독이자 제작자이자 제작사 대표인 ㄱ 감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돼지 족발 발톱을 먹어야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다, 스크린에 영화가 걸려야 진짜 감독이다. 족발을 입에 대지도 않던 내가 먹었던 발톱이 몇 개였던가. ㄱ 감독의 말대로라면 나는 곧 진짜 감독이 되고, 진짜 저작권자가 된다. 배급이란 게 그런 것이다. 확정되면 감독의 위치를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봐왔던 프로듀서다. 나를 정말 잘 아는 이다. 내 영화를 함께 한다는 걸 자랑스러워한다. 정말 고맙다. 피곤해 죽을 것만 같고, 아무리 쪼개어 써도 시간이 부족해 숨이 막히며, 세상 짐을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아 너무 힘들었는데 힘이 난다. 신이 난다. 화가 나도 웃음이 나고, 서운한 감정이 들어도 웃음이 나고, 온몸이 욱신거려도 웃음이 난다. 그냥 웃음이 난다.
울산문화박람회
지난주 목요일이었을 것이다. 오전 8시 10분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총 47통의 통화를 했다. 일의 가짓수로는 다섯 개, 상대한 사람은 아홉 명,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람은 나 한 사람. 통화 시간과 문자 메시지 등을 고려한다면 1~2분마다 뭔가를 결정하고 추진해야 했던 하루였다. 조감독이었을 땐 더 많이도 해봤지만, 이외엔 내게 흔하지 않은 일이다. 절반 이상이 울산문화박람회 준비 때문이었다.
평소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와 관련한 일로 숨 쉴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하루하루였다. 그래서 박람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딱 일주일 전부터 이 일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이래저래 양보해서 4.5미터 곱하기 6미터의 공간을 부끄럽지 않게 조성하고, 영화인답게 시각적인 자극과 스토리텔링을 담아내며, 내 공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대왕 고리를 걸어야 한다는 게 목표였다.
5년간 발로 뛰고 시간을 들이붓고 온 감정을 집중한 반구대를 담아내야 했고, 대곡리만의 특징을 잡아내야 했으며, 이것은 예술적이어야 했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때로는 도망가고 때로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업자와의 신경전을 벌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낌없이 통장을 털었다. 박람회만을 위해 몇 달간 준비해 온 이웃들이 양보를 요청해 오면 군말 없이 다 들어줬다. 그것이 본인의 현재 입지와 미래 입지를 결정하기 때문일 거라는 너른 마음이 하나이고, 시간이 곧 돈이요 나의 입지이자 모든 것이기 때문인 게 둘이다. 자꾸 좁아지는 공간과, 나만의 공간이어야 할 곳에 발을 걸어 잔잔하게 밀려오는 심리적 불편함과, 멀리서 보면 말끔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흠집투성이의 전체 콘셉트와,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징징대는 업자들과 왈가왈부 낭비할 시간과 뇌 에너지가 없었다.
한편으론 뭘 저리 목숨 걸고 하나 싶기도 하고, 기왕 하는 일 제대로 해보자, 싶어 이틀 남겨두고 미친 짓을 몇 개 했다. 크고 작은 화분을 100개쯤 임대해서 깔았다. 공간을 양보했기 망정이지 200개를 빌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발을 들이밀면 내 깃발만 바라보며 모두 ‘포커스 아웃’ 해버렸다. 비용이 추가될까 봐, 아니 덜 남을까 봐 우물쭈물하면 숨도 안 쉬고 내 지갑을 던졌다. 그리고 나름의 반구천암각화와 대곡리의 형상화를 마무리했다. 아코디언처럼 시간과 뇌를 접어서 나는 일주일 동안 기꺼이 ‘나르는 돈가스’가 되었다.
도와준 사람들이 그랬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일단은 발을 멈추고 감탄사를 내뱉었고 사진을 찍었다고. 난 목요일 오전까지 마무리를 지은 뒤 월요일에 마감해야 하는 200쪽 이상의 힘든 서류에 다시 몰입하게 될 것이다.
도와준, 광범위한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울산전시컨벤션센터 울주군 전시장 ‘씨네마울산’의 ‘칠천 년의 역사를 도자에 담다, 우공 도자 초대전’, ‘칠천 년의 역사를 영상에 담다, 다큐 반구대 별곡’을 감상하신 뒤 반구대 동화컬러링북과 도록과 머그잔을 선물로 받아 가세요.
이민정 영화인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