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퉁이 없으면 명품이 아니다.”
명품의 인기에 편승해 시장에 등장하는 위조상품 폐해를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해외 명품 브랜드에 한정돼 사용되던 이 말이 해외로 수출되는 우리기업 제품에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오징어 게임, 케이팝데몬 헌터스 등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K푸드, K뷰티, K패션 등 현지에서 유명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제품 브랜드를 모방한 위조상품이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해외 진출을 준비했으나, 현지에서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상표가 먼저 등록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수출이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또 한 어묵업체의 경우 현지에서 제3자가 해당 기업 상표를 무단으로 등록해 그 회사의 시장 진입을 막거나, 시장에 진입한 뒤에는 판매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진행하는 일도 있었다.
정당한 상표권을 가진 우리나라 유명 식품회사가 해외 위조상품 업체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오랜 기간 많은 비용을 들여 승소했지만, 손해배상액이 불과 2000만원 정도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K브랜드에 대한 전체 위조상품 유통 규모가 97억달러(11.2조원, 2021년도 기준)에 달한다. 최근 4년간(2021~2024년) 해외에서 제3자가 우리기업 상표를 무단 출원해 등록한 사례도 2만건이 넘는다. 화장품, 전자기기, 프랜차이즈, 의류 등 K브랜드가 각광 받는 분야일수록 피해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상표 분쟁 못지않게 특허 분쟁도 그 양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평균적으로 매일 1건씩 중소기업 기술탈취 사건이 발생하고, 1건당 피해액도 약 18억원으로 추산돼 연간 약 5400억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또 2019년 이후 미국에서 우리 기업이 겪은 특허 분쟁은 573건인데 이 중 431건이 피소였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이 당한 피소 건수도 61건에 이른다. 우리나라 대표적 전자회사는 최근 두 건의 특허 소송에서 약 6억3000만달러(9281억원)의 배상 평결을 받았다. 세계 정상급 기업조차 지식재산권 소송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제 해외에서 우리 기업 기술과 브랜드를 지키는 문제는 기업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사항이 된 것이다.
국민주권정부는 지난 10월 1일,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승격해 국가 지식재산 정책의 컨트롤타워로 범정부적인 지식재산정책을 수립하고 총괄·조정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국내외 지식재산 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지식재산분쟁대응국을 신설했다. 이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리 국민과 기업 지식재산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현 정부 결단이자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따라 지식재산처는 국내외에서 지식재산 분쟁 중에 있는 우리 국민과 기업을 돕기 위해 2026년 예산으로 전년 대비 약 45% 증가한 468억원을 편성했다. 이를 토대로 내년에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우선 위조상품의 유통이 빈번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제3자에 의한 상표 무단 선점이나 한류편승행위로 피해를 받은 우리 기업과 업종을 파악해 현지 국가와 함께 단속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피해를 입은 우리 기업이 해외 8개국, 10개 거점도시에 소재한 해외지식재산센터를 통해 현지에서의 지식재산권 출원 및 등록, 경고장 대응, 민·형사상 소송 제기 등 권리보호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둘째, 우리나라 제품 브랜드를 모방한 위조상품 제작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수출 중소·중견기업이 자사 상품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워터마크, 나노필름, 홀로그램 등의 위조방지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전문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고 도입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소비자가 구입한 제품 위조상품 여부를 AI 기술을 통해 신속히 감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위조상품으로 확인되면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시행할 예정이다.
셋째,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예방하기 위해 AI 기술을 활용해 기업이 보유한 자료 중 영업비밀에 해당할 경우 이를 자동으로 분류해주고, 비정상적인 접근과 특이동향이 감지될 경우 자료 반출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중소기업에 보급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이 해외 특허괴물로부터의 무분별한 특허 소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외 특허괴물에 대한 모니터링 범위를 확대해 해당 기업을 조기에 파악하고, 소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분석 정보를 우리 기업에 제공할 예정이다.
중국 전한 시대 역사가 사마천이 집필한 사기에 '호리천리(豪釐千里)'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처음의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큰 차이가 난다”라는 뜻으로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지식재산처의 출범과 지식재산분쟁대응국의 신설로 우리기업의 국내외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의미 있는 첫 발이 내딛어졌다.
지식재산처는 “해외 지식재산 분쟁 중에 있는 우리 기업이 혼자 외롭게 싸우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우리 기업의 든든한 '울타리'로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다. “짝퉁이 없으면 명품이 아니다”가 아닌 “짝퉁이 없어도 명품이 된다”는 말이 K브랜드를 지칭하는 날이 속히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 iprkhan@korea.kr
〈필자〉1967년생이다. 전주 전라고등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졸업 후, 워싱턴대 법학 석·박사(지식재산 전공) 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 제37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뒤 약 30년간 특허청(現 지식재산처)에서 국제협력과장, 대변인, 산업재산정책국장, 차장 등 주요 직위를 두루 거친 지식재산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올해 11월에 지식재산처의 초대 처장으로 임명되어 정부의 '최고 지식재산 책임자(CIPO)'로서 기술혁신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끄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식재산 기반의 R&D 혁신, 지식재산 거래 활성화, 기술탈취 방지 등의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쿠팡 '속도 전쟁'은 끝났다, 이커머스 'AI 보안관' 싸움 [트랜D]](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12/16/d0dcc50a-81bc-458a-85ae-ac12bac0f486.jpg)


![中 ‘좀비 팹’의 역습…삼성 파운드리 위협하는 SMIC [갭 월드]](https://newsimg.sedaily.com/2025/12/17/2H1RKGRPWM_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