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맹국인 필리핀, K조선 핵심 전략 거점으로 활용 가능

2025-08-19

필리핀이 2025년 1분기(5.4%)에 이어 2분기에도 5.5%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동남아시아 주요국인 아세안5(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중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국의 관세 압박으로 대다수 국가의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는 가운데, 필리핀은 오히려 성장 전망이 상향 조정되고 있어 더욱 주목할 만하다.

더 중요한 것은 2025년 상반기 필리핀 내 투자 승인액이 전년 동기 대비 59.1% 증가했으며, 이 중 한국이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한국, 필리핀 최대 투자국 부상

탄탄한 내수, 미국과 방위조약

미 해군 MRO 사업 수주 가능해

한국 기업, 필리핀 투자 승인액 15% 차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조선소 확장부터 삼성전기의 10억 달러 규모 스마트폰·전기차 핵심부품(MLCC) 공장 증설 검토까지, 한국 기업의 필리핀 진출 러시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동안 관광지로만 여겨지던 필리핀이 새로운 경제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필리핀 경제는 지난 30년간 연평균 4.67%의 견조한 성장률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1995년 837억 달러였던 경제 규모는 2024년 4616억 달러로 5.5배 이상 커졌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 역시 1224달러에서 4078달러로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 당시인 2020년(-9.5%)을 제외하면 최근 10년간 필리핀은 베트남의 성장률을 꾸준히 추격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핵심은 탄탄한 내수 기반이다. 1억1000만 명에 달하는 인구와 중산층의 부상으로 강력한 소비 시장이 형성됐고, 해외 근로자가 보내온 송금액이 지속해서 늘면서 가계 소비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콜센터와 데이터 처리 등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며 GDP의 60%를 차지하는 등 필리핀 경제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물가 안정과 금리 인하로 소비가 증가하고 농업도 7% 성장하는 등 균형 잡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필리핀의 성장을 이끈 각종 인프라 투자와 외국인 투자 뒤에는 성장 기조를 이어가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유치 정책이 있었다. 2021년 CREATE법을 제정해 법인세를 30%에서 25%로 인하했지만, 복잡한 인센티브 체계와 행정 절차 지연 등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2024년 CREATE MORE법을 새로 제정해 세제 혜택을 대폭 강화하고 투자 절차를 간소화했다. 부가가치세 영세율 적용 확대, 지방세 최대 2% 고정에 이어 외국인 전문 인력을 위한 특수비자 제도까지 신설했다. 이처럼 법인세 인하에 더해 다양한 행정 및 세제 인센티브가 결합하자 외국인 투자 유치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보다 확실하게 전달됐다.

이러한 투자 환경 개선 노력은 곧바로 효과를 드러냈다. 2025년 상반기 필리핀 경제구역청(PEZA) 투자 승인액은 723억6000만 페소(약 1조761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9.1% 증가했고, 승인 프로젝트 수(133건)도 10.8% 늘었다. 이 중 한국이 전체 투자 승인의 14.87%를 차지하며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한국의 투자금은 107억 페소, 우리 돈으로 약 2619억원에 달한다.

사실 한국 기업의 필리핀 진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삼성전기가 1997년부터 진출했고, SFA와 같은 반도체·전자부품 기업도 꾸준히 현지 생산을 늘려왔다. 최근에는 한화오션의 해상풍력 사업부터 포스코건설의 인프라 사업까지 20여건의 프로젝트가 새로 승인되며 투자 영역이 다변화되고 있다. 과거보다 필리핀의 전략적 중요성과 사업 기회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산업 분야 협력 속에서 특히 조선업 분야에서 필리핀의 전략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한국 조선업계가 해외 생산기지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다 한국이 미국과 추진 중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서 필리핀이 아시아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이미 2022년부터 필리핀 수빅 조선소를 MRO(유지·보수·정비)용으로 사용하다가 해외 수주 물량이 늘면서 선박 건조에도 활용하고 있다. 최근 홍콩과 일본 선사로부터 수주한 운반선 8척도 이곳에서 건조할 예정이다. 한화오션 역시 해외 거점 확보 전략을 펴며 지난해 싱가포르 해양플랜트 기업 다이나맥 홀딩스의 경영권을 확보했고 ,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미·중 경쟁 속 전략적 공간 될 필리핀

특히 필리핀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동맹국으로서 미군이 수빅만을 해군기지로 활용하고 있어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달리 미군 함정의 MRO 사업까지 수주할 수 있는 독특한 이점이 있다. 필리핀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주요 한국 조선사가 공통으로 활용하는 해외 사업 거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필리핀은 한국 조선업계가 미국과 아시아·태평양을 잇는 K조선의 핵심 전략 거점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이는 ‘한국-필리핀-베트남-싱가포르-태평양-미국’을 잇는 거점 체계 구축을 현실화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이제 필리핀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다. 견고한 경제 성장과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한국 기업에 전략적 거점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한다. 미·중 경쟁 속에서 필리핀은 한국의 ‘제3의 전략적 공간’이 될 수 있다. 물론 정치적 변동성과 인프라 격차 등의 리스크는 존재한다. 한국 기업은 이러한 잠재적 위험 요소를 면밀히 분석하고,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K제조업과 K조선 강국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필리핀과의 협력은 여러 모로 유익한 카드가 될 수 있다.

고영경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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