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쳤는데 죽겠다며 8개월 통원치료”…넘치는 ‘나이롱환자’ 꼼수 막는다

2024-10-20

채종원 기자(jjong0922@mk.co.kr), 이희조 기자(love@mk.co.kr), 양세호 기자(yang.seiho@mk.co.kr)

자동차 보험 대수술

교통사고 건수 줄어드는데

경상환자 연간 100만명 돌파

진료비 증가율 10년새 3배

손해율 높여 보험료만 올라

정부, 환자 입증 책임 강화

향후치료비 지급기준 마련도

# 지난해 초 40대 운전자 A씨는 신호대기 중 뒤따라오던 차량이 추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A씨의 차가 멈춰 있었기에 모든 과실 책임은 뒷차 운전자가 졌다. 가벼운 사고라 A씨는 가장 낮은 상해등급인 14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뒷차 운전자의 보험으로 치료비를 100%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무려 8개월 동안 한방·양방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으며 치료비 2700여만원을 보험사에 청구했다.

정부가 A씨와 같은 이른바 ‘나일롱 환자’의 입증책임을 강화하는 등 내용을 담은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안 마련에 나선다. 연간 발생하는 경상환자 숫자가 100만명을 넘어서고, 이들 중 상당수가 과잉진료를 받으면서 보험금이 폭증해 이것이 결국 손해율과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다. 앞으로 부상 정도에 비해 치료를 오래 이어갈 경우 이를 입증해야 보험금을 탈 수 있을 전망이다.

20일 정부에 따르면 최근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및 보험 유관기관들이 모여 경상환자(상해 12~14급) 과잉치료 관련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우선 경상환자의 장기 치료 입증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동시에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주는 향후치료비 지급 기준을 구체적으로 수립하는 데 주력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4월 감사원은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향후치료비의 근거와 지급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경상환자의 (보험금) 과잉청구에 대한 문제의식은 계속 있었는데 자동차 사고를 당한 사람의 의료권도 보장해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 중간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에선 경상환자 진료비가 심각한 정도의 부상을 입어 ‘중상환자’로 분류된 사람들의 진료비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사고 경상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85만3000원으로 2014년 30만원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중상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56.4% 늘어나는데 그쳤다. 경상환자의 치료비 증가율이 중상환자에 비해 3.3배나 높은 것이다.

여기에는 가벼운 부상을 입었어도 보험으로 최대한 오래 치료받으려는 ‘모럴 해저드’가 자리잡고 있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 등 4대 손보사에서만 106만6000명이 경상환자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매년 최소 100만명이 차사고로 경상환자로 판정받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경상환자 가운데 치료 필요기간을 부풀리거나 진단서 발급 횟수를 늘려 장기 치료 모드로 돌입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작년 말 서울 강남에서 차량 수리비가 23만원에 그친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커플이 병원치료비와 합의금으로만 1700만원의 보험금을 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결국 지급 보험금 상승의 원인이 된다. 손해보험협회가 4대 손보사에서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통상적 경상환자(2주)의 2배인 4주로 진단을 받아간 사람이 18만5000명이나 됐고, 이 중 4만7000명은 진단서를 3회 이상 발급받았다. 진단서만 18회 이상 떼어간 사람들도 140명이나 됐는데, 진단서를 18번 받으면 일반적으로 치료기간이 40주로 늘어나게 된다.

실제 경상환자의 치료기간 증가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경상환자 중 가장 등급이 높은 상해 12급의 경우 평균 병·의원 진료기간이 2021년 35.8일에서 2022년 37일로 증가했고, 작년에는 37.6일까지 늘어났다. 심지어 더 등급이 낮은 13급의 경우 진료기간이 2021년 53.7일에서 2022년 49.7일, 지난해 72일까지 늘어 더 크게 부상을 입은 12급보다 진료기간이 긴 웃지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중상에 해당하는 다발성 늑골 골절도 통상 8주 이내에 치료가 끝나는데 경상환자가 40주간 치료를 받는 것은 비정상적인 과잉진료”라고 지적했다.

반면 자동차 사고 자체는 줄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건수는 19만8296건으로 2019년 20만9664건과 비교해 1만건 이상 감소했다.

과잉진료는 건강보험 누수 요인이 될 수 있고 자동차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선량한 보험가입자의 보험료를 높이는 배경이 된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롯데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 7개 손해보험사의 올해 1~8월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80.9%다. 지난해 같은 기간(78.4%)보다 2.5%포인트 오른 수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잉진료 증가세에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자동차 통행량이 늘어난 점이 맞물리면서 9월 기준 손해율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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