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포워드 정준원(36)은 하루 하루가 소중하다.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익숙했던 그가 요즈음 주전으로 발돋움했으니 그럴 법 하다.
정준원은 지난 17일 서울 SK를 상대로 커리어 하이인 22점을 쏟아내며 78-75 승리를 이끈 뒤 취재진과 만나 “저에게 기회를 주신 (양동근) 감독님에게 감사할 뿐”이라며 “선수들과 더 열심히 뛰고 있는 현실에 너무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정준원은 2012년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에 전체 14순위로 지명받은 베테랑 선수다. 큰 키(194㎝)에 빠른 발을 겸비해 대학 시절부터 각광받았던 그는 아쉽게도 프로에선 순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
전자랜드에선 1경기도 뛰지 못한 채 SK로 트레이드되면서 2013년 프로에 데뷔했다. 첫 시작부터 꼬였던 그는 부상과 불운이 겹처 한 팀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창원 LG와 원주 DB, 안양 KGC(현 정관장), 현대모비스까지 유니폼을 입은 팀만 6개에 달하니 저니맨이라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성실한 선수였기에 KGC에서 2023년 식스맨으로 통합 우승의 기쁨과 함께 이듬해 주장직까지 맡을 수 있었다.
매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코트를 누볐던 정준원은 현대모비스에서 기회를 잡았다. 국가대표 이우석의 입대로 3번에 자리가 생긴 상황에서 라이벌 전준범까지 부상으로 쓰러진 게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정준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준원은 DB와 개막전에선 4점에 그쳤지만 고양 소노전(12점)과 대구 한국가스공사전(10점)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았다. D리그(2군)에서 맹위를 떨쳤던 3점슛이 터진 게 주효했다. 그리고 시즌 첫 연승이 걸린 SK전에서 3점슛 9개를 던져 4개를 꽂아 커리어 하이인 22점(종전 2023년 고양 캐롯전)을 기록했다. 6경기 성적표는 평균 9.5점과 3.5리바운드 2어시스트. KBL 전체로 따진다면 모두 30위권의 성적이지만 그에게는 소중한 기록이다.
정준원은 “한국가스공사전에서 3점슛 (3개를 던져) 2개를 넣으면서 자신감이 확 잡혔다”며 “어제(16일) 연습을 할 때도 감이 좋았다. 첫 슛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찬스가 오면 던지자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출전 시간도 달라졌다. 만년 식스맨으로 10분 남짓을 뛰던 그는 이제 30분 가까이 코트를 누빈다. 정준원 스스로 “뛰면서도 이제 (벤치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계속 뛰고 있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을 정도다. 정준원은 “(슛을) 쏴야 할 때가 있고, 아닐때가 있다. 내가 그걸 반대로 하는 걸 느낀다. 30분 이상 뛰는 선수들은 이런 부담을 이겨내고 뛴다는 걸 느꼈다. 아직 부족하지만 점점 좋아질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정준원이 주전으로 살아남으려면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또 있다. 쉼없이 약속된 플레이를 펼쳐야 하는 현대모비스의 농구에 녹아들어야 한다. 정준원이 비시즌부터 이 부분을 몸에 익히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양동근 현대모비스 감독은 “정준원은 비시즌부터 (약속된) 우리의 움직임을 몇 번이나 놓쳤다. 22점을 넣은 것보다 그 움직임을 놓친 게 더 아쉽다. 훈련을 해도 안 된다”고 질타했다.
정준원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준원은 “감독님의 충격 요법”이라면서 “안 되는 부분은 계속 복기해야 한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감독님에게는 (기회를 주셨기에) 감사한 마음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