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한판의 정치 바둑이 끝내기 수순에 들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 돌을 던진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 탄핵으로 사실상 승부는 끝난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는 복기의 시간이다. 과거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며 무엇이 패착이고 무엇이 승착인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지 진실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둑이 종료되면 두 대국자는 자리를 뜨지 않고 곧바로 복기를 시작한다. 패자가 주로 얘기하고 승자는 조용히 듣는다. 패자는 할 말이 많다. 잘 나가던 바둑이었는데 무엇이 승부의 흐름을 바꿔 놓았는지 그 순간이 못내 궁금하고 아쉽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얗게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이마를 맞댄 고심의 눈빛, 어떠한 사심도 필요 없는 진실에 대한 갈망. 복기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관전하던 프로 기사들의 복기는 대국자들보다 더 격렬하다. 본래 바둑은 한발 떨어져 보면 수가 잘 보인다. 그러나 복기는 자신의 바둑관이나 인생관이 강조되기 마련이어서 어느 순간 설전이 시작되면 끝날 줄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실리를 존중하는 쪽과 실리를 우습게 여기는 쪽은 여간해선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다. 프로 9단들의 복기라도 별 다를 바 없다. 때로는 복기가 산으로 가고 나중엔 천리나 멀어진다. 언성이 높아지고 진정이 안 되는 상황도 종종 나온다. 이런 경우 이창호 9단이나 신진서 9단 같은 자타공인의 고수가 필요하다. 그들이 등장하면 복기판은 일시에 조용해진다. 좋은 복기를 위해선 누구나 인정하는 고수가 꼭 필요한 이유다.
문득 의구심이 든다. 비상계엄은 진정 윤 대통령의 승부수였을까. 승부수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옥쇄를 각오한 벼랑 끝 수다. 형세가 불리해 더 이상 만회가 불가능할 때 대국자는 옥쇄를 떠올린다. 여기서 끝내자고 생각한다. 그 비장한 서슬에 상대가 움츠리고 몸조심을 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한 발씩 주춤주춤 물러서다 결국엔 반집을 지고 마는 가슴 아픈 스토리는 찾아보면 의외로 흔하다.
또 하나는 오래 준비하고 숨겨둔 강수를 때 맞춰 터뜨리는 회심의 수다. 옥쇄를 각오한 벼랑 끝 수가 무리수에 가깝다면 이쪽은 노림수다. 상대는 이 노림수를 까마득하게 모를 수도 있고 몸으로 느끼면서도 워낙 상황이 바빠 모른 척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런 승부수는 성공 확률이 높다.
윤 대통령의 승부수는 어느 쪽일까. 후자였다면 아마도 본인은 준비가 됐고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자충수이자 패착이라는 멍에를 쓰고 말았지만, 그의 승부수는 바둑판에 견준다면 성공 가능성이 제법 높다는 계산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과감한 승부수의 배경이 되는 일련의 정보와 사실 여부, 형세 판단 자체가 오류 투성이였다면 어찌 되는 것일까. 승부수는 고사하고 바둑 자체를 둘 자격이 없었던 건 아닐까. 비상계엄 사태 이후 거듭되는 담화 내용은 허망하고 쓸쓸함마저 자아낸다. 바둑경전인 현현기경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하수는 겁이 없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보여준 한국인의 서사는 장쾌하기 그지 없어서 세계인들을 부러움에 빠뜨렸다. 따뜻한 만화영화처럼 권력이나 승부가 다가갈 수 없는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라는 날카롭고 근본적인 질문을 세계에 던졌다.
바둑에선 승부수가 실패하면 돌을 거둔다. 윤 대통령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다. 그는 아직 승부의 기회가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정치를 스포츠로 여기는 것일까. 축구는 10대0이 되어도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진 포기하지 않는다.
매일이 소란하고 혼란스럽다. 국력은 덧없이 증발하고 기약 없는 위기가 이어진다. 그래도 승부는 봐야 하는 게 인간사다. 인간은 틀릴 수 있는 존재지만 역사라는 복기를 통해 끊임없이 가치를 쌓고 신념을 아로새긴다. 이번에도 뛰어난 고수의 정확한 복기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