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하반기 동남아·남미·아프리카에서 반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선진국도 안전지대가 아니어서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프랑스 ‘국가 마비 운동’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스페인·미국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가 잇따랐다. 청년 세대가 시위를 주도했다. 정치 체제 반대나 종교·민족 갈등 같은 해묵은 시위가 아니었다. 청년들이 주로 문제 삼은 건 불공정·불평등과 양극화, 부정부패, 그리고 생활고였다. 켜켜이 쌓인 분노를 단숨에 폭발시켰다. 기성세대의 탐욕과 몰염치, 무능함에 항거한 것이다.
전 세계, 기성세대 타도 시위 이어져
외국인 혐오, 반페미, 극우화 확산
국내서도 취업난…좌절·고립 심화
정부, 주가보다 일자리로 희망 줘야
전 세계 청년의 공통된 불만은 ‘일자리 부족’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일자리는 기성세대가 버티고 있다. 노동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젊은이가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청년들은 고립과 좌절 속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뤼디거 마스 독일 세대연구소장). 피해 의식과 증오심도 커졌다. 내 일자리를 뺏는다는 생각에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혐오한다. 젊은 남성은 젊은 여성을 동반자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한다. 반페미니즘이 확산하고 있다.
이념적으론 합리적이고 균형감을 갖춘 중도가 줄었다. 그 자리를 과격하고 선동적인 극우와 극좌가 채웠다. 전 세계 청년에게 퍼지는 극우화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정치인들은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얄팍한 임시방편에 매달린다.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대세가 됐다. 유럽과 남미에서 극우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포퓰리스트가 전 세계를 쥐락펴락한다.
전 세계에서 청년 일자리 부족으로 벌어진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혐오, 반페미, 극우화, 포퓰리즘…. 당장 청년 시위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팽팽하다. 중국의 과잉 생산과 미국의 관세 압박으로 한국 제조업은 공동화 위기에 처해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9월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5.1%로 17개월 연속 하락세다. 창업도 부진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 1분기 20대 청년 사업자는 35만4000명으로 1년 새 2만6000명 줄었다. 그냥 쉬는 젊은이가 44만 명에 달한다. 청춘 특유의 도전과 활력을 잃고 있다.
청년은 우군이 없다. 노동조합은 청년 편이 아니다. 오로지 기존 노동자, 그것도 정규직만을 위한 이기적 조직으로 변질한 지 오래다. 비정규직이나 취업준비생은 낄 틈이 없다. 비정규직은 8월에 전체 근로자의 38.2%인 856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다. 월 평균 임금 208만원으로 정규직의 절반에 그친다. 취업준비생은 70만 명 선으로 추산된다. 기업은 문과를 홀대하고 경력직을 선호한다. 취업 문이 더 좁아졌다. SK하이닉스가 올 초 신입사원 623명을 뽑았는데, 문과는 4명에 불과했다. 전체 채용에서 신입 비중이 26.6%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알바를 전전하다 나이 서른을 넘기면 취업이 더 어려워진다. ‘그동안 뭐했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악순환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터진 게 캄보디아 사태다. 캄보디아로 간 젊은이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피해자냐, 가해자냐’의 논란이 있다. ‘쉬운 돈벌이’ 유혹에 넘어갔다거나 일확천금을 노렸다는 비난이 나온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겠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월 400만원 보장’ 광고에 속았다는데, 400만원을 일확천금이라 할 수 있나. 국내에 일자리가 풍족했다면 이런 비극도 줄었을 것이다. 싸잡아 매도할 일은 아니다.
최근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자 전업 주식투자자로 나서는 청년이 많다. 주식투자의 정석은 경제의 큰 흐름을 보고, 여유 자금으로 장기 투자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가 주식에 투자하며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쫓기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단기 매매에 빠진다. 심지어 빚을 내 투자한다. 올 1~7월 신용융자 잔고가 가장 많이 늘어난 연령층은 60대 이상(47.6%)과 20대(46.6%)다. 은퇴한 실버 세대와 소득이 불안정한 20대가 주식 투자를 하려고 빚을 가장 많이 냈다. 위험 신호다. 주가 상승에 들떠 아무도 경고하지 않는다.
정부라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외려 거품을 부추기는 것 같다. 주가만 오르면 만사형통이라는 분위기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돈을 풀어 주가를 끌어올리는 금융장세는 늘 끝이 문제였다. 경제 펀더멘털이 받쳐주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되고 있어 언젠가는 일본처럼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버블이 깨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을 빗댄 말이다. 버블은 부동산뿐 아니라 주식시장에 똑같이 적용된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고, 포퓰리즘으로 재미를 본 정부가 그런 걱정까지 면밀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청년에게 주가가 아니라 일자리로 희망을 줘야 한다.
![[동십자각] ‘캄보디아 사태’에도 방치된 청년 고용](https://newsimg.sedaily.com/2025/11/02/2H0ARLMHV4_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