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자비의 눈을 떠야 할 때

2025-01-06

1년 만에 다시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해 겨울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이룬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에서 마음으로 다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불교의 출가 수행자들은 이번 생애에 석가모니처럼 분별과 착각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이루고, 지혜와 자비의 눈으로 깨달음의 삶을 사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출가 나이 40년이나 된 수행자라도 적어도 3년 동안은 스승 석가모니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스스로의 삶을 점검하겠노라 다짐했던 것이다.

내 자성이 모든 걸 갖췄으니

공항 짓고 항공기를 만들 때

욕망 대신 자비심 깃들었다면

지난해에는 송광사의 방장이신 현봉 스님과 함께했다. 달라이라마의 초청으로 세계승가포럼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현봉 스님은 한국을 대표한 어른으로 참석하고, 나는 포럼의 발표자로 참석했다. 매일 새벽 스님의 숙소 앞에서 만나 함께 마하보디 사원으로 이동해 두 시간 동안 보리수 아래에서 좌선하고 코라를 도는 걷기 수행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현봉 스님은 홀연히 열반에 드셨고 나 홀로 마하보디 사원을 걷고 있다.

마하보디 사원은 출입이 엄격하다. 저녁 9시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새벽 5시에 해제한다. 검문소 앞에는 참배객들이 새벽 4시부터 길게 줄지어 기다린다. 가방과 소지품은 물론 몸수색까지 하고, 핸드폰은 소지할 수 없다. 줄느런한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꽃과 향을 파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이 뒤엉킨 길을 매일같이 걸어야 하는 게 마치 통과의례 같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을 있게 만들어 준 소중한 분들이다. 감사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가짐으로 날마다 미소 지으며 청정한 깨달음의 흐름에 들어온 듯 평화롭고 안전하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3일째 되는 날 보리수 아래에 고요하게 앉아있는 낯익은 한국 스님을 보았다. 그 앞으로 다가가 “미공 스님이요?”라고 물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서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계 후 첫 겨울이던 40년 전 해인사 강원 1학년 때, 둘이서 100여 명의 대중이 공부하고, 발우공양하고, 잠자는 공간인 큰방을 도맡아 물걸레로 청소하고, 소리 높여 경전을 외우던 도반이었다.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만큼 한결같이 올곧게 수행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만나지 못했어도 늘 든든한 도반이었다. 이번 동안거 석 달 동안 석가모니가 깨달은 장소에서 수행하고 있는 옛 도반의 눈빛은 형형했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겸손과 지혜가 가득했다.

깨달음의 경지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다르다. 선종의 6조 혜능대사(638~713)는 스승인 홍인대사로부터 금강경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음을 이루었다. 대사는 ‘일체만법이 자성(自性)을 떠난 적이 없었구나!’ 하며 그동안 ‘내 자성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실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본래 생멸이 없다는 사실을, 내 자성이 본래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내 자성이 본래 아무런 동요가 없다는 사실을, 내 자성이 능히 일체만법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이처럼 깨달음을 이룬 청정의 눈과, 분별로 가득 찬 욕망의 눈은 동일한 사물을 보더라도 다르게 인식된다.

석가모니가 2600년 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21일 동안 환희심의 경지를 표현한 내용이 화엄경의 첫 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제가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마갈제국 아란야 법 보리도량에 계실 때였습니다. 비로소 정각을 이루셨습니다.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보륜과 여러 가지 보배로운 꽃과 청정한 마니로 빈틈없이 꾸며져 있었으며, 온갖 색상의 바다가 끝없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마니로 된 깃대에서는 항상 광명을 놓고 끊임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깨달음을 이루니 같은 땅도, 나무도 모두 보배 국토가 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10여 일 동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181명이 탑승한 제주항공기가 폭발하는 끔찍한 장면의 영상이 생생하게 방영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세월호의 침몰 과정을 영상으로 보고 있어야만 했던 것처럼, 항공기의 착륙과 폭발장면이 반복해 방영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안타까워만 해야 하는 악몽을 되풀이하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모든 순간에 지혜와 자비심이 깃들어 있었다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항을 짓고, 항공기를 만드는 등 여러 과정마다 욕망 대신 지혜와 자비가 뒷받침되었다면….

천지가 무너져 내린 듯 충격과 슬픔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고, 모든 일에 정성과 배려와 연민과 지혜가 깃들여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지혜와 자비의 눈을 뜨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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