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을 찾다 발견한 구와 사각형, 소리와 빛을 더하다

2025-11-26

천장에 매달린 구슬이 정육면체를 이룬다.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작가 박은선(60)이 선보인 ‘정육면체’(2025)는 296개의 구로 반듯하게 짜인 정육면체의 형상을 띄고 있다. 높이가 2.5m에 이르는 대형 조형물은 박은선의 예술 세계가 집약돼 있다. 구와 사각형, 그가 조각으로 선보이길 원했던 순수함과 맞닿은 요소들이다.

이탈리아에서 주로 활동했던 박은선의 이번 개인전 ‘치유의 공간’은 그를 대표하는 기둥 조각을 비롯한 조각 22점과 회화 19점을 공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탈리아와 유럽 곳곳의 전시장에서, 국내 건물의 공공예술품으로 자리해 오고 있다. 다만 국내 전시공간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조각 최신 작품부터,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던 회화가 이번에 선보이고 있다.

전시 개막 하루 전인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난 박은선은 “제가 갖고 있는 재료로 욕심부리지 않고, 순수성을 갖고, 단순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구와 사각형, 기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살면서 사회를 버티다 보니 순수해지지 못했다. 아이들을 보며 그 순수함이 부러웠다”며 “그런 순수함을 갈망하면서 작업을 했다”고도 말했다. 그가 화강석이나 대리석 등 자연의 재료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게끔 조각을 하는 것도 순수함을 표현하려는 시도다.

‘정육면체’는 그 순수함에 ‘소리’를 더했다. 천장에 매달린 정육면체는 속이 빈 대리석 구로 만들어졌다. 두께가 8㎜, 무게가 1㎏인 구는 슬쩍 밀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낸다. 박은선은 “세게 부딪히면 깨질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며 “돌을 보기만 하는 데서 그칠 수 없었다. 만져보고, 눈으로 느껴보고, 귀로 들어보고 싶었다. (보는 이들도) 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접근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빛’을 더한 것은 ‘무한기둥-확산’ 연작(2025)이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0년대 초, 박은선이 머물던 이탈리아는 확산세가 심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그는 코로나19로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작업에 몰두하다 함께 하는 가족을 보며 그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1993년부터 이탈리아로 건너가 활동했던 박은선은 “나를 도와주고, 나를 존재하게 만든 이탈리아의 친구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며 “‘희망을 줄 수 있는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하다 빛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돌을 깎아 만든 구 안에서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LED 조명은 자연석을 거쳐 밖으로 투과되며 따뜻한 느낌을 낸다.

이번 전시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박은선은 수직 기둥 형태의 조각을 주로 선보였다. 하단부도 가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을 하지만 박은선은 위태로워 보이도록 했을 뿐 무너지지 않게끔 작품을 만들었다. 해외에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가도, 작품을 사들이겠다는 누군가가 나타나 다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던 자신의 위태로움을 조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어려운 시기를 겪는 동안 느낀 고마움이, 작가가 추구하던 작품에 ‘빛’을 더한 것이다.

조각에 집중했던 박은선은 이번 전시에서 회화도 선보인다. 박은선은 “전시 공간의 여백을 조각으로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빈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림으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조각할 때의 행위를 그림에 담았을 뿐, 어디 가서 저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 적은 없다”며 “조각을 사진으로 옮겨 놓은 느낌을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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