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살얼음판’ 걷는 건설업계의 고뇌

2025-08-25

“다음 차례가 되지 않도록 모두 노심초사하고 있죠.”

대형 건설사의 한 부장급 직원은 최근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건설업계 상황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낸 포스코이앤씨와 DL건설이 된서리를 맞자 혹여나 그다음 순서가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에 현장 안전에 힘쓰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업계에선 사망사고가 나면 전국 현장 작업을 일제히 중단하고, 대표와 임직원들이 사의를 표하는 게 일종의 대응 매뉴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건설사들도 반복되는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속사정은 복잡하다. 내부 다잡기만으로 사고를 모두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기 힘든 건설공사 특성과 더불어 현장 숙련공의 고령화, 외국인 노동자 급증은 안전 관리를 갈수록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됐다. 여기에 최저가 입찰제와 빠듯한 공사 기간, 이상 기후까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안팎으로 수두룩하다. 현장에서는 “발주처도 같이 책임감을 갖고, 계약서상에 안전에 대한 부분을 강조해 추가로 비용을 반영하거나 공기를 충분히 반영하는 등의 사회적 장치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건설사들의 부주의뿐만 아니라 인력 문제부터 산업 구조적인 부분까지 세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취지다.

건설산업을 향한 부정적 시선으로 청년층의 건설업 기피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커지고 있다. 한국건설인정책연구원이 지난해 고등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만 ‘건설 분야로 취업(또는 대학, 대학원 진학)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올 만큼 장기화하는 건설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건설업계의 고뇌는 나날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현장 안전부터 시공 품질, 사업성까지 모두 챙겨야 하는 건설사들이 눈여겨보는 건 스마트 건설이다. 디지털 전환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등을 통해 생산성과 안전을 동시에 확보해보겠다는 뜻이다. 롯데건설의 경우 “스마트 건설 기반 안전 관리 분야 고도화를 통해 중대재해를 근절하겠다”며 최고안전책임자(CSO) 산하 안전보건관리본부 내 ‘안전혁신부문’을 최근 신설했다.

김희수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원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건설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답은 ‘스마트 건설’과 ‘탈현장 건설’ 등 디지털 전환에 있다”고 역설했다.

문제는 스마트 건설이 현장에서 실질적 역할을 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조사 결과 스마트 건설 주요 기술을 아직 현장에 적용하지 못한 기업이 평균 67%일 정도로 기술 활용 양극화가 심하고, 중소·중견기업들은 엄두도 내기 힘든 실정이다. 정부가 개발·보급하는 기술이 실제 현장 수요와 적용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건설산업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처벌과 규제 일변도의 대책만으로는 추가 사고를 막기 힘들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현장 안전 강조가 처벌을 넘어 사고 예방과 건설산업 혁신 및 구조적 전환을 이끄는 정책의 도화선이 되길 바란다.

이강진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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