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을 이기려고 하나요? 재밌어서 하는 거죠.
이세돌 9단은 타고난 승부사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두뇌 서바이벌 예능 ‘데블스 플랜 2’에 출연한 그는 여느 출연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매 라운드 게임이 바뀌며 복잡한 규칙이 공개될 때마다 바삐 필기하는 사람들과 달리 머릿속으로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는 “게임을 더 하고 싶다”는 이유로 다들 기피하는 감옥동을 택했고, “보다 자유롭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다른 이들과 동맹을 맺는 대신 나 홀로 플레이를 펼쳤다. 승패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게임에 집중한 것이다.
이 9단은 인공지능(AI)과 대국에서 1승을 거둔 최초이자 최후의 인류다. 그게 가능했던 것도 승부사 기질 덕분이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원하는 플레이에 집중했기에 예측 불가능한 수가 나온 것. 그가 4국 78수를 두는 순간, 알파고는 어이없이 무너졌다. 2019년 프로 바둑기사 은퇴 이후 AI는 그의 삶에 바둑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2023년 카드게임 홀덤 대회에 출전해 데뷔전을 치르고, 바둑과 빙고 등에서 착안한 보드게임을 만들고, 올해부터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공학과 특임교수로 강단에 서는 등 각종 변화 속에서도 AI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이 9단은 AI의 화려한 데뷔를 위한 조연으로 무대에 섰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서 인류의 첫 1승이지 마지막 1승을 거머쥐었다. 모두가 AI를 쓰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까? 2016년 AI와 인간이 맞선 세기의 대결 주인공을 2025년에 다시 찾은 이유다.
✅️복기: 무엇을 놓쳤나
바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복기(復棋)’다. 두 사람이 대국을 마친 뒤 경기 순서대로 바둑을 다시 두면서 내용을 검토하는 것이다. 평소 바둑을 예술에 비유하는 이 9단은 “바둑은 복기가 끝나야 비로소 작품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널리 사용되면서 복기를 생략하거나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선 안 된다”며 “오히려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AI 시대에 복기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예전엔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복기했어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수가 어떻게 나왔는지 상대방 생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죠. 그래야 각각의 수가 어떻게 맞물려서 승패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볼 수 있고요. 그런데 지금은 굳이 둘이서 같이 복기할 필요가 없어요. 각자 자기가 둔 수를 AI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뭐가 잘못됐는지 물어보면 되니까요. 물론 프로 바둑이니 승패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복기를 통해 저마다 전략을 읽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바둑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AI의 등장으로 이 모든 게 사라져 버렸어요.
복기의 가치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복기를 권하는 이유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