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계 최초로 미국 화폐의 주인공이 된 장애인 인권운동가 스테이시 박 밀번(1987~2020·한국 이름 박지혜)이 새겨진 동전이 11일(현지시간)부터 유통된다.
지난 8일 미 조폐국은 스테이시 박 밀번 쿼터(25센트) 동전을 연방준비은행과 각 주화 단말기로 배송해 11일부터 유통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동전은 조폐국의 '미국 여성 쿼터 프로그램' 19번째 디자인이다. 조폐국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여성 선구자들의 업적을 기념해 매년 5개 쿼터를 발행해왔다.
이 동전의 앞면에는 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얼굴이, 뒷면에는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채 전동 휠체어에 앉아 연설하는 밀번의 모습이 새겨졌다.
1987년생인 밀번은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 조엘 밀번과 한국인 어머니 진 밀번의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퇴행성 근육 질환을 앓았던 그는 "너는 다른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부모의 격려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낙상 사고를 계기로 자신의 몸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걸 인식했다.
이후 그는 장애인으로서 겪은 불편함과 부당함, 개선해야 할 점 등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청소년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주목받았다.
스무 살이던 2007년 밀번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정부가 공립 고교 교육과정에 장애인 역사를 포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메소디스트 대학과 밀스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스물세 살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장애인, 유색 인종, 성 소수자 등을 위한 인권 운동에 힘썼다. 지난 2014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밀번을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정책 자문 위원으로 지명하기도 했다.
신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밀번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사회적 약자들에게 마스크 등 긴급 의약품·위생용품을 전달하는 데 앞장서다 건강이 악화됐다. 결국 그의 33번째 생일인 그해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밀번의 동전은 최소 3억개, 많을 경우 7억개까지 정도 발행될 예정이다. 1970년대 발행된 쿼터가 지금까지 통용되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은 앞으로 50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밀번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한편 올해 쿼터 디자인에는 밀번 외에도 언론인이자 시민운동가 아이다 웰스(1862~1931), 걸스카우트 창립자 줄리엣 고든 로(1860~1927), 천체 물리학자 베라 루빈(1928~2016), 테니스선수 알테어 깁슨(1927~2003)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