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tvN 드라마 <정년이>(연출: 정지인/극복: 최효비/출연: 김태리, 신예은, 라미란, 정은채, 김윤혜, 우다비, 승희, 이세영 등)는 현재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과거 한 때 큰 인기를 누렸던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다.
주인공인 정년(김태리 분)과 영서(신예은 분)가 공동체와 연대감이 중요한 매란국극단의 연구생들로서 서로 경쟁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동명의 웹툰인 <정년이>가 원작이다.
tvN 드라마 <정년이>에서 정년(김태리 분)은 천재적인 소리꾼이다. 한국 전쟁 후 시골 마을에 사는 정년이는 판소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장에서 생선 파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판소리를 한다. 어머니로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받은 덕분이다. 그럼에도 정년이는 물려받은 천재성 즉, 명창인 어머니를 뛰어넘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자신의 삶에서 우월성을 추구한다.
드라마 <정년이> 초반에서 보이는 정년이는 매란국극단에서 같은 연습생이지만 완성형 배우에 가까운 영서(신예은 분)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우월성을 추구한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우월성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을 발전시키고 부족함을 극복한다고 본다. 여기서 우월성은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성장 욕구를 의미한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발하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 이러한 우월성의 추구는 인간의 본능이고 삶의 동기이다. 그래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인식하는 것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열등감은 인간이 더 나아지려는 동기를 제공하며,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려는 긍정적인 욕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정년이> 중반에서 정년이는 열등감이 아닌 자격지심을 강하게 느낀다. 매란국극단 선배인 혜랑(김윤혜 분)이 정년이에게 "네가 영서를 이기기 위해서는 소리로 승부를 봐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정년이의 삶의 태도는 급변한다. 어떠한 좌절 상황에서도 꿋꿋하고 낙관적이었던 정년이는 초조함과 불안에 휩싸인다. 심지어 연대감을 중요시했던 정년이는 연대감을 깨는 태도를 보인다.
정년이는 득음을 위한 강박적인 태도로 자신을 혹사시킨다. 영서가 정년이를 찾아가 걱정한다. "득음이라는 건 몇 년에 걸쳐서 하는 거지. 이렇게 단기간에 목을 혹사시켜서 하는 게 아니야. 너 이러다 목 부러지면 무대도 못 선다고"라는 영성의 말에 정년이는 "내가 무대 못 서믄 너는 오히려 경쟁자 하나 더 치워불고 좋은 거 아니여?"라고 비꼰다. 그리고 "다 가진 너는 당연히 이해가 안 되겄제. 소리도 춤도 연기도 다 완성형인께. 소리 하나에만 매달리는 내가 어떻게 이해가 되겄어"라고 말하면서 자격지심을 드러낸다.
정년이의 열등감이 자격지심으로 바뀌면서 정년이 자기 자신과 주변 관계들이 망가진다. 정년이의 자격지심은 자신의 시간적·물리적 한계상황을 벗어난 강박적인 태도로 득음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게 만든다. 완벽주의적인 태도는 성과를 내는 데 중요하지만, 정년이의 자격지심으로 인한 지나친 완벽주의적 태도는 병적이다. 열등감으로 인한 우월성의 추구를 보여주었던 이전의 정년이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처럼 자격지심이 동기가 되어 지나친 완벽주의로 사는 삶은 행복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가 없다.
자격지심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의 열등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우월성을 추구하는 동기가 되는 열등감이 아니다. 자격지심은 자기 스스로를 성장시키기보다는 자기 비하와 불안으로 인해 현실을 왜곡하여 수동적이거나 회피적인 태도를 만들어내는 특징을 나타낸다.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확신하거나 자기 비난에 빠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극심한 불안 감정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지나친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강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지나친 완벽주의는 현실적으로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성향이다. 완벽주의자는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그 기준이 과도하게 높아 스스로를 쉽게 만족시키지 못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정년이가 부르짖듯이 "소리는 내 바닥이고 내 하늘이여! 내 전부라고... 근디 그만도? 여기서 무너지면 발밑이 까마득한 벼랑인데 어떻게 그만둬!"라는 공포스러운 정서를 경험하기도 한다.
열등감을 느끼고 우월성을 추구하면 성장한다. 그러나 자격지심을 느끼고 지나친 완벽주의로 가면 까마득한 벼랑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열등감이 건설적으로 다뤄지면, 다른 사람과의 협력이나 사회적 유대가 강화되면서 발전한다. 반면에 자격지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과민 반응을 보이거나, 자기방어를 위해 공격적으로 행동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열등감으로 사는지 자격지심으로 사는지는 주변과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격지심이 아닌 열등감으로 우월성을 추구하며 낙관적인 미래의 삶을 그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