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답게 죽은 찰스 1세

2025-03-26

왕권신수설을 믿고 종교 박해와 인종 박해에 더해 민중을 박해하던 영국의 국왕 찰스 1세(사진)는 철기군 올리버 크롬웰의 반란으로 퇴위와 함께 세인트 제임스궁에 유폐됐다. 그의 국사(國師)가 토마스 홉스였다. 재위 동안에 인구의 6%인 30만 명이 죽었다. 그는 의회의 투표로 사형 언도를 받았다.

영국의 날씨가 늘 그렇듯이, 1649년 1월 30일은 그날따라 더욱 추웠다. 유폐되었던 찰스 1세는 런던 타워 근처의 사형장으로 이송되었다. 템스강의 강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다. 그는 옥리에게 따뜻한 외투 한 벌을 부탁했다. 죽으러 가면서 별 부탁을 다 한다고 생각했던 옥리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날씨가 무척 춥다. 처형되는 동안 나는 이 추위에 몹시 떨 것 같다. 역사가들은 내가 죽음이 무서워 떨며 죽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다. 나는 떨며 죽고 싶지 않다.” 형리는 그에게 외투를 마련해 주었다.

함께 처형된 시종무관장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결국 그도 사형대에 섰다. 사형집행수는 당대의 최고 ‘고수’였던 리처드 브랜든이 맡아 남들은 대여섯 번 내리쳐야 자르는 목을 단칼에 벰으로써 국왕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이로써 23년의 전제정치는 끝나고 5년에 걸친 크롬웰의 철권 정치가 시작되었다. 역사에서는 찰스 1세가 반동인지 크롬웰이 반동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리면서 이때부터 반동과 진보에 대한 사관이 갈린다.

찰스 1세의 죽음에 대한 평가는 착잡하다. 왕은 왕처럼 죽었고, 시종무관은 시종무관답게 죽었다고 쉽게 말하지만, 역사에 비겁하게 죽은 왕도 많고, 장렬하게 죽은 하급 무사도 많다. 하급 무사나 시종무관은 그렇다 하더라도, 제왕이나 장군이 신분에 맞게 죽지 못하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그럴 경우 그 생전의 공업마저 묻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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