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윤석열 대통령

2024-10-06

힘이 센 사람일수록 권력자의 심기를 살핀다.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30년 전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들은 비서실장의 ‘비상시 대처요령’을 들어야 했다. “도중에 기분이 언짢아지면 고개를 돌려 창밖의 나무를 보십니다. 그러면 즉시로 서류를 들고 일어나 ‘각하,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면서 나와야 합니다.” 당시 문고리 권력은 하루에 저녁식사를 두 번, 세 번씩 하면서 뇌물을 받았다. 압수수색할 때 집에서 돈다발 썩는 악취가 진동했다. 밥을 사고 돈을 주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물었다. “요즘 어른 기분이 어때요?” 황제가 따로 없었다. 이런 권력을 누렸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민심이 떠나가자 아들을 구속시키는 결정을 피할 수 없었다.

김건희 여사 문제로 민심과 불화

쫓기는 여당은 독자 노선 가능성

대통령 문제로 비화되기 전에

실기하지 말고 냉철히 결정해야

지금의 권력 주변 풍경도 여전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청렴하고 사심이 없을지 몰라도, ‘용산’ 주변에는 수상한 사람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전직 5선 의원의 지역구 공천을 받아줬다는 정치 브로커는 대가로 국회의원 세비의 절반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전 서울의소리 기자에게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을 공격해 달라고 사주했다. 이틀 뒤 ‘한동훈 당비 횡령 비리’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그리고 연봉 3억원의 정부 투자기관 감사 자리를 전리품으로 차지했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을 팔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시중의 민심은 험악하다. 골수 보수층도 김 여사 얘기가 나오면 인상을 찌푸린다. 지난주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최소 4명이 이탈했다. 야당은 재상정을 예고했다. 범야권 의석수는 192석이어서 여당 의원 몇 사람만 마음을 바꾸면 200표를 넘겨 가결된다. 김 여사를 지켜온 여권의 기류도 냉담해지고 있다. 한동훈 대표는 “특검법이 한 번 더 넘어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미리 얘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는 ‘김건희’ 국감이 될 것이다. 사흘 뒤면 22대 총선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끝난다. 여당 의원들이 더 이상 ‘용산’과 검찰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다. 특검법이 가결되면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공천·인사 개입 등 오만가지 혐의로 불려다니고 압수수색도 받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결정적인 녹취록과 텔레그램이 튀어나와 스모킹건이 될지 알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바로 레임덕에 빠지고 야권은 탄핵열차의 시동을 걸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벌써 “도중에라도 끌어내는 것이 민주주의”라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 라인을 신설되는 제2부속실에 몰아넣으려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런데 파악해 보니 숫자가 너무 많아서 수용이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한다. 김 여사 ‘통제’는 쉽지 않다. 여권 핵심 인사는 “수석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 여사가 대통령에게 민망한 언행을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인사 개입 개연성은 높아진다. 성난 민심에 쫓기는 여권은 정치적 생존을 위해 독자적인 길을 걸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먼저 김 여사가 국민 앞에 서서 직접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내 역할만 충실하겠다”고 한 대선 전 약속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들끓는 민심과 충돌하면 김 여사 문제가 윤 대통령 문제로 바뀔 수 있다.

민주주의는 참 어려운 그 무엇이다. 프랑스 혁명의 경전(經典)이 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왕권신수설을 거부하고 현대 민주주의 사상의 강력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런 루소도 “신(神)들로 구성된 인민이 있다면, 이 인민은 민주정으로 스스로를 통치할 것이다. 그렇게 완전한 정부는 인간에게는 맞지 않는다”(『사회계약론』, 1762년)고 토로했을 정도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인간이 감당하기에 버겁다는 뜻이다. 두 세기 이상 인간에 의한 민주주의의 신화(神話)를 펼쳐온 미국도 대선에 불복한 극단주의자들의 국회의사당 불법 점거 폭동을 겪지 않았던가.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직면했다. 윤 대통령이 냉철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차 하는 순간 이 나라는 남미처럼 추락할 것이다. 클리프 리처드의 ‘The young ones’는 청춘의 사랑을 예찬하는 노래지만 인간의 유한성(有限性)을 잊지 말라고 서늘하게 경고한다. “Cause tomorrow sometimes never comes.” 그렇다. 나에게 내일이 온다는 보장은 그 어느 문서에도 적혀 있지 않다. 가사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라는 2000년 전 호라티우스의 비장한 명령을 변주(變奏)하고 있다.

권력은 한순간에 소멸하는 꿈일 뿐이다. 천하의 양김도 재임 중 눈물로 아들의 구속을 받아들였다. 대신 나라를 혼란으로부터 지켰다. 과연 이 나라 민주주의를 건설한 거인답다. 윤 대통령이 부디 실기(失期)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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