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대신 빗자루 든 주방위군 … 트럼프식 ‘치안 정치’ 뜨거운 논란

2025-08-31

지난달 28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 맥퍼슨 스퀘어 공원. 군복 차림의 군인 10여 명이 쓰레기와 낙엽 등을 치우며 잔디밭을 정리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범죄 소탕’을 천명하며 논란 속에 배치한 주방위군 소속 병사들이었다. 이날 총 대신 빗자루를 든 군인들의 모습에 당혹해 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인근 버지니아주에서 워싱턴으로 출퇴근한다는 브라이언 루이스는 “공원 청소를 시키려고 그렇게 요란하게 주방위군을 투입했나 싶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병사도 “환경 미화로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좋지만 군인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범죄 소탕 대신 환경 미화?

지난달 11일부터 미국 수도 워싱턴의 치안을 총괄하고 있는 주방위군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범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약 2200명(1일 현재)의 병력을 워싱턴 곳곳에 배치한 상태다. 워싱턴 D.C 수도 경찰국(MPD)을 연방 군이 직접 통제하도록 한 것이다. 당장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란 비판 목소리가 커졌지만, 트럼프는 같은 달 21일 주방위군을 직접 격려하는 자리에서 “연방 통제로 수도 워싱턴을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하지만 최근 주방위군이 공원 청소 등 도시 미화 작업에 투입되면서 결국 ‘범죄 소탕’은 명분일 뿐,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노린 트럼프식 정치 전략에 불과한 것 아니냔 지적이 잇따르는 중이다.

범죄율 감소 vs 정치적 연출

물론 백악관은 “지난달 14일부터 25일까지 12일 연속 살인 사건이 보고되지 않았다”며 주방위군 투입이 범죄 감소에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는 일부 통계상으로도 입증된다. CBS 방송이 분석한 결과, 지난달 7일부터 25일까지 워싱턴 내에서 발생한 살인 등 강력범죄는 전년 동기 대비 50% 줄었고, 주거 침입은 48%, 차량 절도는 36%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애초 “자치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반발했던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 D.C 시장도 최근 범죄율이 감소하자 입장이 다소 달라졌다. D.C 시장실은 ‘주방위군 투입에 따른 시민 안전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중앙일보 질의에 “연방 병력 증원 이후 폭력 범죄가 크게 줄었으며 주방위군 지원으로 MPD의 활동이 보강된 건 사실”이라는 공식 입장을 전해왔다.

그러나 범죄율 감소를 주방위군 투입의 결과로 곧바로 연결 짓긴 어렵단 반론도 있다. 범죄 감소는 이미 올 상반기부터 미 전역에서 진행된 추세였고, 워싱턴 역시 다르지 않았단 지적이다. 실제 미국 범죄사법위원회에 따르면, 워싱턴의 상반기 살인 사건 감소율은 전국 평균(19%)과 같았다. 앰허스트대 로렌스 더글러스 교수(로스쿨)는 가디언 기고문에서 “워싱턴은 범죄율이 이미 낮은 수준이었지만 트럼프가 상황을 전시처럼 포장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최근 "D.C 범죄 데이터가 부정확하고 의도적으로 조작됐다"는 경찰 내부 폭로가 나오면서,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하는 등 범죄 통계의 정확성을 놓고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을 넘어 미 전역으로?

이처럼 범죄 감소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트럼프는 워싱턴뿐만 아니라 다른 주까지 주방위군 투입을 확대할 방침이다. 그는 “워싱턴에서 이미 투입 효과가 입증됐다”고 주장하면서 “시카고, 볼티모어, 뉴욕 등에도 같은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미 전역으로 주방위군 배치를 확대할 경우 또 다른 법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방 수도인 워싱턴 D.C.와 달리 일반 주의 경우 대통령이 주지사 동의 없이 주방위군을 투입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란법 등 예외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한 법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윌리엄 뱅크스 시러큐스대 석좌교수(법학)는 CNN 인터뷰에서 “D.C.의 경우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갖고 있지만 일반 주에서는 주지사의 권한이 우선되며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건 트럼프가 주방위군 추가 배치를 예고한 도시들이 모두 민주당 소속 시장들이 이끄는 곳이란 점이다. 치안 불안 상황을 민주당의 무능으로 연결해 정치적인 반사이익을 노리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실제 트럼프는 주방위군 확대 배치를 공언하면서 “민주당 시장들이 무능하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 민주당 주지사협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을 정치에 끌어들여 주지사의 지휘권을 약화시키려 한다”며 반발하는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백악관 vs 민주당 정면 충돌 예고

트럼프는 민주당의 이런 반발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D.C.에 투입된 주방위군의 연장 배치 문제를 놓고 정치 공방이 커지는 상황이다. 현행 법상 대통령의 D.C. 경찰 통제 권한은 30일로 제한돼 있다. 이를 연장하기 위해선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 트럼프는 “주방위군의 영구 배치”까지 거론할 정도로 연장 배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이에 공화당은 통제 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해 우선 처리하겠단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대 입장이 확고해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군을 '치안 정치'에 동원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여론 역시 싸늘하다. 워싱턴포스트-샤르스쿨 여론조사에 따르면, D.C. 주민 가운데 10명 중 8명은 ‘트럼프의 연방 통제 조치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국가비상사태법을 근거로 “의회 승인 없이도 D.C. 경찰에 대한 연방 통제를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또 다른 법적 논란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뉴욕대 로스쿨 산하 법ㆍ정책 연구기관인 브레넌센터의 엘리자베스 고이틴 공동국장은 “국가비상사태법은 명확히 열거된 권한만 발동할 수 있게 하는 구조”라며 “이 법 어디에도 대통령이 D.C. 경찰 통제 30일 제한을 우회할 근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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