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모 대학교에 직업 특강을 다녀왔다. 내 직업인 콘서트가이드는 대학생들에겐 생소하고 신기한 직업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강연이 끝나고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함께 웃었던 두가지 내용이 있다. 첫번째로 클래식을 강연하기 가장 어려운 대상은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고3 학생들도 내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두번째는 해설하기 가장 어려운 음악회는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음악회’라고 답했고 이번에도 함께 웃었다.
찾아가는 음악회는 말 그대로 평소 클래식을 접하기 힘든 곳으로 직접 찾아가서 음악회를 여는 프로그램이다. 학교 입장에선 최고의 프로그램이지만 초등학생에겐 힘든 시간일 수 있다. 1시간 정도 강당에 앉아서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데 아이들의 집중력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진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런 친구들을 위해 클래식을 재미있게 전하며 관심을 유도하는 게 내 역할이다. 그래서 박수 치며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빠른 템포의 춤곡을 준비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음악가 오펜바흐의 ‘캉캉’(원제 ‘지옥의 갤럽’)이 있다. 캉캉은 프랑스 춤으로 치마를 펄럭이며 한쪽 다리를 높게 들며 추는 춤이다. 캉캉 음악 중 가장 유명한 곡이 오펜바흐의 캉캉이다.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 중 지옥에서 펼쳐지는 축제에 등장하는 음악이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재미있는 경험이 떠오른다. 한번은 초등학교에서 캉캉을 연주하는데 강당에 모인 아이들이 너무나도 즐거워하며 음악에 맞춰 ‘떼창’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굉장히 의아했다. 이 곡은 가사가 없는 연주음악이기 때문이다. 소리가 울리는 강당 특성상 아이들이 노래하는 가사가 명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모두 같은 가사를 부르는 것은 확실했다.
음악이 끝나자 학생들에게 제목을 물었고, 아이들의 답에 나를 포함한 연주자들과 학교 선생님 모두 크게 웃었다. 제목은 바로 ‘군대영장송’이었다. 한 유튜버가 캉캉을 패러디해서 군대영장송을 만들었고 이게 초등학생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캉캉을 연주할 때면 아이들은 즐겁게 ‘군대영장’이라는 후렴을 외쳤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이 부른 군대영장송이나 원곡인 캉캉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패러디다. 캉캉이 등장하는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는 1858년 초연됐는데 약 250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오페라 ‘오르페오’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1600년대 이탈리아 오페라를 패러디한 프랑스의 오페레타 음악은 약 200년이 지난 뒤 우리나라에서 다시 패러디됐다. 패러디가 패러디된 음악, 우리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즐거운 방식이다.
나웅준 콘서트가이드·뮤직테라피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