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의 누드 사진

2025-03-13

누드. 여기에 항상 따라붙은 두 가지 단어는 외설과 예술. 그 중간은 별로 없는데, 비평가 존 버거는 간단하게 외설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는 논지를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에서 펼친다. 이야기 방식은 존 버거답게 복잡하지 않다. 마네의 누드화 ‘올랭피아’(1863)를 보자. 침대 위에 누워 관객을 빤히 쳐다보는 벌거벗은 올랭피아. 그녀를 나체의 남자로 바꾸어보자. 우리는 그 그림을 과연 참아낼 수 있을까?

지금은 예술이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마네의 ‘올랭피아’ 조차도 사실 당시엔 외설 시비가 있었다. 마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올법한 이상적인 비율의 여인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 사실 그는 티치아노의 ‘우리비노의 비너스’의 구도를 차용해 실재의 창녀 모습을 그린 것이다. 비너스의 눈길은 고혹적이고 올랭피아의 눈빛은 도발적이다. 어쨋든 관객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대상은 바로 남성이다.

사진은 어떨까? 에드워드 웨스턴 등 유명 사진작가들은 저마다 여인의 누드 사진을 남겨 놓았다. 내가 알기론 나체의 남자는 찍지 않았다.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마찬가지다. 여성 작가들도 여성의 누드를 사진 찍을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답을 찾았다. 일단 대답은 ‘그렇다’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사진작가 임안나가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세미 누드촬영대회에서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오는 25일부터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리는 <외눈박이와 천사> 사진전이다. 임안나 작가는 2016년 5월에 열린 제24회 대전 세무누드 전국사진촬영대회를 시작으로 2019년 8월의 제10회 동해 추암일출 누드사진전국찰영대회까지 약 4년간 전국에서 열린 누드촬영대회를 찾아다녔다. 물론 그가 남겨 놓은 누드 사진들은 여인의 신체를 탐미적으로 담아내지는 않았다. 누드가 아닌 누드촬영대회 자체가 그의 피사체였다. 존 버거 식으로 바라보자면, 누드 사진이 생산되는 메커니즘을 탐구한 것이다.

임안나 작가가 남겨놓은 작업노트에 적힌 한국의 누드 촬영대회에 대한 정보는 흥미롭다. 코로나19 이전에는 700명이 넘게 참여한 누드 촬영대회도 있었다 하니. 한국사진작가협회 마산지부가 1984년 공식적인 누드 촬영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에 참가한 사진가들은 사진 협회에서 섭외한 모델들을 찍는다. 팀 별로 진행되는데, 촬영지도자들이 장소와 의상 등을 바꾸며 연출을 주도한다.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기가 원하는 팀을 결정한다.

국내에서 누드 사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시기에 출간된 두 책이 있다. <현대 사진 예술>(1982)과 <완전분석 누두사진기법>(1988)이다. 두 책을 개괄한 임안나 작가는 여성 모델의 신체를 정신과 완전히 분리해 몸 그 자체에만 주목하는 것이 촬영 기술의 핵심이라 말한다. “정신과 육체, 외설과 예술, 미와 추에 대한 양가적 해석과 표현의 가능성”은 다루어지지 않고 “가슴, 허리, 엉덩이 등에서 찾는 곡선미와 풍만함의 조형성”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작가노트의 사회학적 보고서는 그러나 왜 누드가 여성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없다. 하지만 임 작가가 내놓은 사진들은 그러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는 장면들이다. 붉은 장막 뒤에서 보이는 여인의 실루엣, 층암절벽 사이로 내놓은 여인의 다리, 풀장 조각배 위에 누워서 카메라를 쳐다보는 여인의 뒤태, 모래사장에서 엉덩이에 손을 올리고 포즈를 취한 여인 등. <외눈박이와 천사>에 등장하는 누드 모델들은 벌거벗겨져야 되면 안되는 장소에서, 그리고 이상하게 연출된 무대 위에서 천사처럼 외눈박이 남성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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