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정부의 전략 중 하나인 스테이블코인 육성에 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 재무당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글로벌 달러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월가와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오히려 달러의 지위 약화를 경고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상원 예산소위에 출석해 “미국 국채로 뒷받침 되는 스테이블코인은 세계적으로 달러 사용을 확대할 것”이라며, “향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2조 달러(약 2740조 원)에 이르는 건 매우 합리적인 전망”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총은 1년전보다 2배 가까이 급성장한 약 2370억 달러 수준으로, 테더(USDT)와 USD코인(USDC)이 전체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스테이블코인이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정 자산에 가치를 고정한 가상화폐를 말한다. 주로 달러나 유로 등에 교환가치가 고정되게 설계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지탱하기 위해 담보를 두는데, 미국 국채가 많이 활용된다.
이날 상원을 통과한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제도권에 편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1 담보 유지, 자금세탁 방지 의무, 연방 및 주 정부의 공동 감독 체계 등을 규정했다.
헤지펀드에서 외환 분야를 전문으로 했던 베선트 장관은 “역사적으로 달러의 지위는 여러 차례 도전을 받았지만, 새로운 흐름이 달러의 영향력을 확장시켜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다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보고서에서 달러의 기축통화 비중이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글로벌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한 비중은 58%로, 1년 전보다 2%포인트 줄었으며 10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0%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금은 안전자산으로 재부상하며 보유 비중이 19%에 육박, 유로(16%)를 제치고 달러 다음으로 많이 보유되는 자산이 됐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헤지펀드 업게 ‘큰 손’으로 불리는 폴 튜더 존스 튜더 인베스트먼트 창립자는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단기 금리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달러 가치가 10% 이상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파월 연준 의장의 임기 만료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초강경 비둘기파 성향의 인사를 새 의장으로 지명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달러 약세 압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날 블룸버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서 갈수록 많은 참모가 베선트 장관을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블룸버그 달러지수는 올해 들어 8% 이상 하락하며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 중이다. 이는 2005년 지수 도입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달러 옵션시장에서도 투자자들은 향후 한 달간 달러가 주요 통화 바스켓 대비 추가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중앙은행들의 ‘탈달러’ 움직임도 뚜렷하다. 2023년 한 해 동안 각국 중앙은행은 금 보유량을 1000t 이상 늘렸다. 이는 지난 10년 평균의 두 배 이상이며, 현재 글로벌 금 보유량은 1960년대 수준에 육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