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늦가을 어리연꽃

2024-10-23

지금쯤 어느 물의 음지에 잠겨서

자장가를 부르는가

몽돌에 묻어있던 이야기는

햇살이 널어 말리는데

쉼 없이 지껄이는 물풀들은

머리채 끄덕이기에 바쁘다

튕겨 올리는 물보라가

종소리로 옮겨 갈 때

무심한 듯 피고 지던 어리연꽃

등고선에서 잔병치레하던 노을이

더는 날지 못한 꿈으로

여운이 깊어 갈 때

물속에 뿌리내린 발

슬그머니 거두어들이고 있다

◇채자경= 서울출생. 월간 ‘순수문학’ 등단. 형상시학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여성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 ‘목련꽃 사다리’가 있음. 2023년 제9회 한국문학인상 수상.

<해설> 시인은 자신의 현재 처지를 “등고선에서 잔병치레하던 노을이 더는 날지 못한 꿈으로 여운이 깊어 갈 때”로 설정하고 시를 써내가고 있다. 시의 중심 소재는 어리연꽃이다. 일반 연꽃에 비해 작은 연꽃으로 아마도 시인은 집안에서 키우는 연꽃일 수도 있겠는데, 가을이 되어 연꽃의 잎마저 삭아가는 과정을 어느 음지에 들어“자장가를 부르는가”로 묘사하고 있는 점은,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적 이미지로 옮겨놓은 공감각적 비유가 잘 드러나 있다. 연의 바닥에 깔아둔 몽돌도 물풀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 과거를 회상하는 연꽃 속에서는 튕겨 올리는 물보라가 종소리로 옮겨 간다하고 있으니, 시인이 기른 연꽃은 겨울을 앞두고 뿌리내린 발 슬그머니 거두어들이는 깔끔한 마감을 꿈꾸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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