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세기 조선에서 등장한 달항아리는 고려청자나 청화백자와 달리 오랜 시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아무나 도자 작품을 소장할 수 없던 당시에는 청초하고 마음 착해 보이는 백자 달항아리가 설 자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달항아리는 지금 귀하신 몸이다. 달항아리는 해외 경매에서 수십억 원에 거래되고 있고, 미술품 애호가들 사이에서 달항아리는 ‘힙한(멋진)’ 예술품이 되었다. 젊은 예술가들 역시 너도나도 달항아리를 만드는 일에 나서면서 이제는 어떤 게 멋진 달항아리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짜 달항아리’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토포하우스는 이용순 개인전 ‘조선 도공의 둥근 마음’에서 그의 작품 11점을 선보인다.
66세의 이용순은 달항아리가 유행하는 시대에 조선 도공이 만들던 ‘진짜’ 달항아리를 불러내는 작업을 한다. 그는 정식으로 도예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에게 ‘생존 달항아리 작가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도공이다. 박서보는 그의 작품을 두고 “형식이나 테크닉을 넘어서 몰입의 경지에 이르고 있으며, 무한반복의 몰입에서 나오는 무목적성의 경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산에서 채취한 백토와 직접 만든 유약으로 백자 달항아리를 만든다. 조선도공들이 백자를 만들던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것. 그의 백자 달항아리는 사람 얼굴처럼 작품마다 모습이 다르다. 빛에 따라 다양한 백색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계로 찍어내듯 동그란 것이 아니라 원만하고 풍요로운 둥그스름한 형상을 하고 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흙과 불이 빚어낸 시간의 흔적을 느끼며, 과거 조선 도공들의 제작 과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묵직하게 50여 년간 진행한 그의 작업은 이미 해외 저명한 미술품 소장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벨기에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악셀 베르보르트, 건축가 이타미준 등이 이용순의 달항아리를 소장하고 있다. 오현금 토포하우스 대표는 “공간과 빛에 따라 보이는 달항아리의 각양의 얼굴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며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각양각색의 맛을 모두 담아내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2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