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원 빅데이터로 ‘디지털육종’…농진청 미래농업 준비현장 가보니

2024-09-18

집중호우와 폭염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됐다. 농촌진흥청은 이상기후를 사전에 대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수집해 기후 적응 품종을 개발하고 작물 생육·수급을 예측하고자 농림위성도 쏘아 올릴 예정이다.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현장을 확인하러 농진청에 방문했다.

최근 농진청이 주력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육종이다. 표현체연구동은 기후적응 품종이 개발되는 주요 연구시설이다.

‘표현체’란 식물의 크기·모양·색깔 등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를 뜻한다. 품종의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품종을 개발하려면 유전체 정보와 표현체 정보가 모두 필요하다. 표현체연구동에선 ‘대량검정시설’이라 불리는 일종의 사진 촬영 기계로 벼와 콩의 핵심집단 각각 100종을 이틀에 한번씩 사진 촬영해 생육 시기별 표현체 정보를 수집한다. 수집된 표현체 정보를 빅데이터화하고 여기에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다. 이를 ‘디지털 육종’이라고 한다.

백정호 농진청 농업연구사는 “표현체 정보를 분석해 얻은 수확량 예측 등 특성을 파악해 기후 적응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딥러닝 기술을 통해 표현체의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육종하려면 육종가가 수천개의 개체를 직접 재배하며 그 생육 특성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디지털 육종에서는 AI로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함으로써 시간은 물론 노동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글로벌 종자회사 바이엘은 디지털 육종을 도입해 토마토 품종을 개발하는데 전통 방식에 비해 시간은 17%, 노동력은 66%를 감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표현체연구동에서 수집한 정보는 슈퍼컴퓨터에 저장된다. 농진청은 지난해 9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슈퍼컴퓨팅센터를 개소하고 기상청으로부터 관리전환 받은 슈퍼컴퓨터를 운영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란 전세계에서 성능이 상위 500위 안에 드는 컴퓨터를 가리킨다. 농진청의 슈퍼컴퓨터 ‘나비스’는 2023년 6월 기준 세계 399위를 기록한 슈퍼컴퓨터다. 나비스는 일반적으로 컴퓨터 3600대가 동시에 작업하는 것과 같은 성능을 자랑한다. 예컨대 벼 1종에는 3024가지의 유전자원이 들어있는데, 일반적인 컴퓨터라면 이를 분석하는 데 6개월이 걸리지만 나비스는 4일이면 분석을 완료한다.

농진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나비스를 활용해 농업 빅데이터를 확보·분석하고 있다. 특히 민간 종자 기업의 수요 등을 반영해 벼·콩·고추 등 주요 작물의 유전형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한다. 그 외 농업 기상과 병충해 등에 관한 연구자료도 다루고 있다.

이태호 농진청 농업연구관은 “앞으로 농업뿐 아니라 생명·보건 분야에서 학계·산업계와 공동 연구할 계획이다”라고 밝히며 “슈퍼컴퓨팅 기술의 응용 범위를 넓히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농업·농촌의 고령화, 인구 감소에 대비해 농업 기계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밭작물 생산 전과정 기계화’ 체계를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농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밭농업 기계화율은 66.3%로, 논농업(99.3%)에 비해 매우 낮다. 이를 2026년까지 77.5%로 끌어올린다는 게 농진청의 목표다.

특히 재배면적이 넓고 소득이 높은 마늘과 양파의 경우 ‘스마트 기계화 재배모델’을 보급해 우선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기계화 재배모델’은 품종·재배기술과 연계해 파종·정식부터 수확·저장까지 전과정을 기계화하는 기술이다. 최덕규 밭농업기계화연구팀 실장은 “스마트 기계화 재배모델을 적용하면 마늘의 경우 관행 방식 대비 노동력 79%, 비용 74%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부터는 배추·감자에 대해서도 스마트 기계화 재배모델을 개발·보급할 방침이다.

더불어 농진청은 농작업 자동화를 위해 사과·배·복숭아 과원을 대상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접목된 제초·운반·방제 로봇도 개발했다. 이들 로봇은 지난해부터 2027년까지 ‘농업용 로봇 현장 실증 지원사업’을 통해 실제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농진청은 내년 하반기 농업용 위성도 발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농업위성센터를 신설하고 우주항공청·산림청과 함께 광역 농림관측을 위한 차세대 중형 위성 4호를 개발 중이다. 농림위성은 벼·콩·양파·마늘 등 주요 작물의 재배 면적을 측정하고 생육 상황을 관측하는 데 쓰인다. 대규모 풍수해와 병해충 발생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는 데도 활용될 전망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농림위성을 통해 전달받은 정보를 분석해 농산물 생육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농산물 수급계획을 수립하게 될 것”이라면서 “ 향후 관측 품목을 늘리고 다중 영상 융합활용을 통해 정확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주=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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