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이사장 '성공적' 평가에 비난 목소리
코스피 제자리, 코스닥 후퇴... 1년 성과 어디에
구심점 없어 기업 참여 저조... "반쪽짜리 정책"
"한국증시, 변두리 전락... '성공'에 동의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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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있다. 크게 기대했던 일이 별 볼 일 없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한국의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보며 떠오른 속담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에서 진행된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과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업 경영 투명성 미흡, 소액주주들에 대한 보호 부재라는 문제의식에서 추진된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는 우리 시장의 저평가를 해소하는 것"이라며 "(밸류업 프로그램은)그런 면에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2월부터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꼽혔던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를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이달 들어 1년이 됐지만, 여러 지표의 행보는 밸류업의 추구 방향과 다소 멀어 보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1일 종가 기준 코스피 지수는 2654.58로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일(2024년 2월 6일, 2647.08) 대비 0.28%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는 867.40에서 774.65로 10.69% 감소했다.
밸류업 핵심 지표로 활용되는 코스피 PBR(주가순자산비율)은 21일 기준 0.93배로, 프로그램 시작일(0.96배) 대비 뒷걸음질쳤다. 동기간 코스닥 PBR 역시 1.93배에서 1.76배로 떨어졌다.
PBR은 어떤 기업이나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눠 산출된다. 시가총액은 주가와 전체 주식 수를 곱해 나타내기 때문에 '기업 가치'로 통칭된다. 다시 말하자면, PBR은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 대비 회사의 현재 주가 수준이 저평가돼 있는지, 고평가돼 있는지 나타내는 기준인 셈이다.
기준값은 '1배'다. PBR이 1배 미만이면 저평가됐다고 말해진다. 이를 활용한다면 국내 시장이 저평가됐다는 것은 확실하다. 21일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 10위권 내 우량기업 PBR을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1.12배에 그친다. 현대차, KB금융 등은 각각 0.58배, 0.55배 수준이다. 동일 기준 코스피 상장사 총 931곳 중 저평가 기업은 약 60%(564곳)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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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 추진됐다.
일본은 2023년 초부터 증시 부양책을 지속해 왔다. 정책 시행 1년 후, 국내 코스피와 유사한 일본의 '프라임' 상장사 전체 중 PBR 0.5배 미만 기업 비중은 5.9%에서 3.3%로 2.6%포인트(p) 줄었다. PBR 0.5~1배 사이에 위치한 기업도 34.2%에서 30.7%로 3.5%포인트(p) 감소했다.
코스닥과 유사 기업군으로 꼽히는 '스탠다드' 상장사(프라임 대비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군) 중 PBR 0.5배 미만 기업 비중 역시 20.7%에서 15%로 낮아졌다.
'정부가 주도한 기업의 적극 참여'가 원인으로 꼽힌다. 기시다 전 총리 산하 내각은 밸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제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며 참여를 호소하고 나섰다.
그 결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밸류업 공시 도입 9개월만에 프라임 시장의 49%, 스탠다드 시장의 19%가 공시에 참여했다. 지난해 10월을 기준으로 봤을 때 참여율은 프라임, 스탠다드 시장 상장사의 공시 참여율은 각각 88%, 47%까지 뛰었다.
반면 국내 기업의 참여는 저조하다. 밸류업 공시 제도 도입 후 9개월이 지난 현재, 코스피 시장과 코스닥 시장의 밸류업 공시(예고 포함) 참여 기업 비율은 각각 11.07%, 1.23%에 불과하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경우 예고 공시를 제외하면 0.8%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엔 '구심점'이 없다고 평한다. 실제 한국에서는 기업 참여율을 가른 세제 인센티브 등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정책을 마련키도 전 밸류업 지수를, 또 그에 관련된 ETF(상장지수펀드) 등 상품을 먼저 내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반쪽짜리 정책이란 말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점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며 "기업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혜택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말로만 나오고 있고, 실질적으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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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하 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거래소의 신년 간담회 후인 지난 14일, 정은보 이사장 발언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 팩트가 틀린 자화자찬의 기자회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거래소의)미사여구로 점철된 보도자료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밸류업 핵심 이슈인 주주권리, 투자자 보호, 이사회 독립성 등의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며 "해외에서 한국 증시는 빠르게 존재감 없는, 변두리 시장으로 전락 중"이라고 토로했다.
거버넌스 포럼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이머징마켓(신흥국시장) 인덱스 내 한국의 비중은 2016년 16%로 1위 중국(17%)과 고작 1%포인트(p) 차이였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지수 내 한국 비중은 9%까지 하락했다. 이는 중국(25%), 인도(20%), 대만(19%) 등에 비했을 때 한참 뒤처지는 수준이다.
아시아기업거버넌스협회(ACGA)는 "한 국가의 비중이 10%도 채 되지 않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의미 있는 시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됐다는 정 이사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가 취임한 지난해 2월 15일부터 약 1년 동안 코스피는 약 3% 하락하는 등,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정책을 홍보하는 동안 국내 증시는 후퇴한 셈"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밸류업 정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그의 견해에 외국인 투자자도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다"며 "지속적인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매도가 그 증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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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국내 시장 참여자들의 비판이 쇄도하고 있음에도, 한국거래소는 물론 금융당국에서까지 '자화자찬'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JP모간이 주최한 '코리아 컨퍼런스'를 통해 국내외 투자자 앞에서 밸류업 프로그램을 두고 "흔들림 없이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되새겨 보면 흔들림이 '없다'는 말은 '보지 않는다'와 같은 뜻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거버넌스포럼은 물론, 소액주주연대, 금융투자업계, 관련 학계 등 모두가 한국 밸류업 정책의 새 요건, 방향 등이 공개될 때마다 공통된 지적을 내놨다. 밸류업 정책이 그저 '단기 증시 부양책'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투자자, 이른바 '동학개미'들은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기대를 떨치고 해외 시장에 투자하는 투자자, 소위 '서학개미'로 돌아서고 있다. 그들은 그 이유로 '혁신'과 '이점(利點)' 부족을 들었다.
지난 2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자체 온라인 플랫폼에서 국민 15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4.6%의 응답자가 '국내 기업의 혁신성이 정체돼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내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우선 과제로 장기보유주식 등에 대한 세제혜택 도입(26.0%), 배당소득세 인하(21.8%) 등 금융투자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 확대를 꼽았다.
정부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고 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다. 다만 '핀셋 개선'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실질적 가치 상승을 위해서는 기업의 혁신과 성장이 촉진돼야 하고, 그런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에게 '베네핏(이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 개선과 함께 이를 뽐낼 수 있고, 시장에 참여하는 모두가 그 매력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당국과 한국거래소, 여타 관계 기관의 과제인 셈이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도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속을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갑작스러운 정치 리스크와 내수 불황,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까지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구심점이 더 중요하다. 주식시장은 금융시장 일부이고, 한국의 금융시장은 엄격한 규제 체계를 지닌다. 정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규제와 관련된 기관이 든든한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자는 낙관적(樂觀的)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시각이 낙천적(樂天的)으로 바뀌게 되면 위험해질 수 있다. 마냥 좋게 받아들이다가 위기를 마주했을 때 당혹스러워지기보다는, 매순간 어떻게 더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지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