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기술 발달을 말하는 ‘실용적 연구자’
보 안 싱가포르 난양공대 컴퓨터과학과 석좌교수

모든 기술에 양면성 있어…문제는 기술 아닌 사람이어서 정부 규제· 사회적 규범 중요
올해 초 중국의 ‘딥시크’ 등장…젊은 인재들의 자유로운 연구 문화가 원동력 된 듯
자체적 개발 역량 갖춰 ‘이 분야는 한국이 최고’ 목표로 전략 수립을…투자·지원도 따라야
보 안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컴퓨터과학과 석좌교수는 중국 출신 인공지능(AI) 전문가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중국과학원 컴퓨팅기술연구소에서 부교수로 재직한 이력이 있다. 지금은 ‘세계인공지능학술대회(IJCAI)’ 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달 29일 난양공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안 교수는 자신을 ‘실용적인 연구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미국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AI와 게임 이론을 접목해 경찰, 미국 해안경비대 같은 정부 기관이 보안·안전 위험을 막기 위해 어떻게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최적인지 탐구했다. 최근엔 금융, 산업 분야 문제 해결을 위한 AI 활용법을 고민한다.
안 교수는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앞으로 더 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AI가 인간 일자리를 대체하거나 신종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등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규제·규범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기술 발달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각국의 경쟁적 자구 노력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그는 ‘딥시크 충격’을 거론하며 중국 정부 주도의 빠른 변화를 긍정 평가하기도 했다. 기술 발달의 핵심 요인으로는 정부 차원의 적극 투자, 대학을 통한 더 많은 인재 육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AI 관련 뉴스가 있다면.
“올해 초 딥시크의 R1 출시 소식이다. 올해는 특히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거의 모든 주요 기업들이 ‘마누스’ 등 AI 에이전트를 내놓아 업계 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딥시크만 한 혁신은 보지 못한 것 같다.”
- ‘초가속 시대’라는 진단에 동의하나.
“그렇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다들 시장에서 1등이 되기를 원한다. 문제는 1등 경쟁에만 몰두하다 보면 모델을 개발할 때 그 모델이 충분히 안정적인지, 위험 요소는 없는지 등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검토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인간처럼 사고·추론하는 범용인공지능(AGI)이 빠르면 5년 내 등장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나는 그보다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여전히 ‘환각(Hallucination)’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현재 가장 뛰어난 모델조차 아주 단순한 수준의 계산을 실수하기도 한다.”
- AI 활용 측면에서 문제는 없을까. 최근 영국에선 정부가 살인 예측 알고리즘을 개발해 논란이 됐고, 세계적으로는 AI 무기 활용 우려도 나온다.
“모든 기술엔 양면성이 있다. AI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사람들은 AI 활용으로 이익을 얻고 있다고 본다. 싱가포르 시민은 국내 공항 입출국 심사 때 여권을 제시하지 않아 편리하다. 안면 인식 기술 덕분이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이 때문에 정부가 법이나 규제를 통해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사회적 규범도 중요하다.”
- 로봇, AI가 향후 인간 일자리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불안한 전망도 나온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지금도 거대언어모델(LLM)과 관련해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대기업 내 코딩 작업의 70%는 AI에 의해 수행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마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기술 개발을 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경쟁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이고,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다.”
- AI 윤리, 사회적 규범 차원에서 특별히 유의할 점이 있다면.
“나는 윤리 전문가는 아니다. 나는 AI 기술이 여전히 초기 단계라고 본다. 어떤 나라든 AI에 투자할 생각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은 시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 중국에서 딥시크가 등장한 배경이 무엇인지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20대 포함 똑똑하고 젊은 인재가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직 구조가 수평적이어서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연구에는 예측 불가한 면이 있어서, 구상처럼 작동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딥시크는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즉각 시도해보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안다.”
- 중국 정부·당 차원의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 투자 측면은 어떻게 보나.
“중국엔 딥시크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비슷한 규모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LLM 관련 회사가 10개 이상 있다고 본다. 최근 주목받는 ‘체화(Embodied) AI’ 분야도 마찬가지다. 중국에는 수백개에 달하는 로봇 관련 회사가 있다. 거기서 일할 똑똑한 인재도 그만큼 많아야 한다. 창업을 위한 자금도 필요하다. 이 점에서 중국 정부는 매우 빠르고 공격적으로 움직인다. 어떤 분야가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자금을 곧장 투입한다. 지난해에만 중국은 AI 박사 인력 양성을 위한 신규 교육기관을 여럿 설립했다. 박사 정원도 크게 늘렸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기엔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 미국이 AI 반도체 대중국 수출을 규제하는 등 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점점 격해지는 듯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맞다. (제재 때문에) 중국은 좋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양한 AI 모델이나 도구들과의 협업도 중국 기업들은 활용하기 힘들다. 이는 중국이 더 나은 AI 모델을 개발하고 미국 및 다른 나라들과 경쟁하는 데 있어 큰 약점 중 하나다. 그래서 지금껏 GPU 등 하드웨어 자체 개발에 나섰고, ‘엔비디아’ 수준은 아니지만 지난 몇년 새 상당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화웨이’ 등 중국산 GPU 칩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LLM도 나왔다. 지금은 어떤 제재가 오더라도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된 듯하다. 이 때문에 경쟁이 앞으로 더 악화할 수도 있다.”
- 중국과 미국 모두에서 연구 경험이 있다. 연구 분위기, 정부 정책 등 양국 간 차이를 짚어본다면.
“논문 수나 주요 학회 참가 수를 보면 중국이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창조적 혁신을 기준으로 보면 미국이 여전히 앞서 있다고 본다. 여기서 창조적 혁신이란 0에서 1로, 없던 것을 만드는 혁신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연구·개발이라든지 첨단 기술 생태계 전반이 훨씬 더 잘 갖춰져 있다. 반면 중국은 1에서 100으로 가는 것은 잘한다. 존재하는 아이디어라면 빠르게 따라가고, 이후 경쟁력 있는 모델, 심지어 더 나은 모델도 만들어낸다. 미국 대학은 대부분 사립이고, 교수·연구자가 자신이 하고픈 연구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반면 중국은 그런 자율성이 적다. 한편으로 이는 중국 정부가 직접 개입해 특정 연구 분야에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력, 기업이 많은 만큼 ‘내부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다.”
- 미·중 경쟁 속 한국이 갈 길이 고민이다. 오픈AI, 딥시크의 ‘빠른 추격자’가 돼야 할까.
“꼭 범용 AI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정 산업 분야에 특화된 세계 최고의 모델을 만들면 된다. 한국은 인구가 약 5000만명으로 싱가포르의 10배 수준이다. 경제 규모도 그렇고, 작은 나라가 아니다. 전자 산업에 강한 기반이 있고, 서구권과도 잘 연결돼 있어 좋은 GPU를 확보하기도 쉽다. 그런 강점을 AI 개발 경쟁에서도 살려야 한다. 세계가 ‘이 분야는 한국이 최고’라고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도 자체적인 개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일단 중요하다. 지금 AI 분야에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오픈소스’ 모델들이 많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이 만들 필요가 없다. 딥시크 모델도 오픈소스로부터 많은 이점을 얻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고급 기술 인재가 필요하다. 산업계 및 정부의 전략적 투자·지원도 함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