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인터뷰|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의료대란 자초해놓고 강 건너 불 보듯…무책임한 정부”
”의대 정원 재조정 해야…수시와 달리 정시는 기회 있어”
의정(醫政)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요 국공립대학병원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료 공백이 시작된 지난 2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수술 취소 사례가 급증했고, 6월에는 수술 예약 건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
병원에서 환자 수용을 거부 당해 재이송하는 이른바 ‘구급차 뺑뺑이’ 사례도 증가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19일부터 8월 25일까지 재이송 건수는 3071건으로, 전공의 사직 사태 이전 190일 동안인 지난해 8월 11일부터 지난 2월 17일까지 집계치 대비 46.3% 증가했다.
박주민(51)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은 10월 29일 월간중앙과 가진 인터뷰에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역 공중보건의(공보의)를 파견하면서 지역 의료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며 “지역 및 필수 의료 확충을 위해 의료개혁을 하겠다는 정부 주장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여·야·의·정 협의체 통한 해결 주장, 진정성 없어”
의료 대란의 장기화로 인해 소아 응급 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이 10곳 중 1곳도 안 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관련 우려도 커진 상황이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부모조차도 아이를 응급실에 데리고 갈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저도 한 아이의 아빠로서 소아응급의료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의료 대란 이후 소아 환자는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절반을 맡고 있고, 소아 전문응급의료센터는 10%정도만 맡고 있다. 배후 진료 인력이 무너지면서 야간 응급 진료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소아 응급 의료는 이전에도 극심한 저수가와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기피 현상이 심화한 필수 의료과 중 하나였다. 의정 갈등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한 만큼, 정책적으로 수가를 반영해 줄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건보 재정의 건전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고, 그런 취지에서 ‘문재인 케어’를 비판해 왔다. 그런데 정작 정책 집행의 미숙함과 정책 실패로 안 써도 될 돈이 나가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의료 공백 사태 수습을 위해 쓴 건보 재정이 2조원 이상이다. 사태가 지속된다면 거의 비슷한 규모의 액수를 또 들여야 한다. 여기에다 지난 2월 윤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2차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정부 필수 의료 패키지를 위해 5년간 10조원 플러스 알파를 지출하겠다고 했다.
매년 2조원 이상을 쓰겠다는 건데, 건강보험 순증분보다 많은 돈을 쓰는 꼴이다.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무책임한 정부다.”
국민의힘은 여·야·의·정 협의체를 통한 의정 갈등 해결을,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진정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협의체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태도다. 2025년도 의대 정원도 열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전제가 협의체를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정부는 조정 불가 입장만 고수하면서 시간을 보내왔다. 2000명 증원 결정이 과학적이지 못하고 절차도 잘못됐다는 것이 보건복지위 청문회를 통해 밝혀졌다. 그러면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은 좀 해보자는 거다. 수시와 정시로 나뉜 의대 입시 과정이 다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수시와 달리 정시는 아직 그 규모가 발표되지 않았다. 예전에도 A대학이 1000명을 뽑겠다고 발표해 놓고 면접 등을 마무리하고 보니 도저히 1000명은 뽑을 수 없겠다 싶으면 합격자 수를 줄이던 게 관례다.”
앞서도 잠깐 언급됐지만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 의료 과목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한 건 큰 문제다.
“해법이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지금 정부 얘기처럼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의사들이 넘쳐서 결국 필수 의료 과목으로 밀려들어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걸 낙수효과라고 칭하던데 ‘천만의 말씀’이다. 필수 의료 과목 전공의나 전문의들이 ‘우리도 엘리트인데 낙수냐’며 반발하더라. 그들의 명예를 존중해줘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주요 해법 중 하나가 필수 의료 과목에 대한 수가를 조정해 주는 것이다. 국내 의료 체계 특성상 환자들의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을 단기간에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수많은 환자를 각박한 처우 속에서도 감내해야만 하는 전공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의료 과목별 수가 체계를 선별하고 급여 삭감 기준도 재조정 해야할 필요가 있다.”
“리베이트 관행, 약품명 아닌 성분명 처방이 대안”
비만체료제 등 일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 다만, 여기서도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당초 시범 사업이던 비대면 진료가 의료 대란 등을 계기로 본 사업처럼 돼버렸다는 점이다. 비대면 진료는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등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시범적으로 도입한 제도인데, 갑자기 그 범위가 확대되면서 정밀한 진료 없이도 약을 처방해 주는 사례가 늘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면밀한 검토를 거쳐 비대면 진료 범위를 축소시키는 등의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면허 의료 행위 등 의료법 위반 사례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은 우선 의료법에 있어 의료 행위가 뭔지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무면허 의료 행위는 뭐고 허용된 의료 행위는 무언지,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행위는 또 뭔지 매번 회색지대에 놓여있다. 물론 의료 행위라는 걸 과연 입법적, 기술적으로 열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저도 좀 의문이 있지만, 여하튼 조금 더 세밀한 규정이 만들어질 필요는 있다. 특히 간호사들은 간호법이 통과되면서 본인들이 해야 할 업무와 하지 않아도 될 일이 명확해지는 걸 원한다. 그런데 전공의들이 빠져나가면서 정부가 간호사들을 활용해 그 공백을 메우고 있지 않나? 의정 갈등으로 여러 문제가 뒤엉키고 있다.”
의료계 등을 둘러싼 불법 리베이트 관행을 뿌리뽑을 해결책은 없나?
“의사들이 전문의약품을 처방할 때 약품명이 아닌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방안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A라는 약을 처방했는데, 이 약이 시중에 없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요즘에는 의약품 구하기도 굉장히 어렵다고들 하더라.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A라는 약이 아니라 그 약에 들어있는 성분 아닌가? 그런데 꼭 전문약을 A약, B정 이런 식으로 처방하다 보니까 요즘처럼 의약품 구하기 어려울 때는 더욱 난감하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약사들도 성분명 처방을 원한다.”
최근 노인요양시설에서의 학대·사망 사례가 늘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복지위 국감에서도 노인요양시설에서 발생하는 학대 사례 등에 대해 강력히 대처해야한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관련해 최근 자의적 노인 강박을 금지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김예지 민주당 의원) 등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아울러 부족한 요양보호사 인력 등에 대한 처우 개선이라든지 관련 법 제도 개선까지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복지위 차원의 방안이 있다면?
“워낙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뚜렷한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사안이다. 다만, 저출생 문제를 다룬 한국은행의 지난해 하반기 경제전망보고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백약이 무효가 아니라 좋은 약이 있는데 안 써왔다’면서 여러 조치가 가능했음에도 충분한 처방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서울을 중심으로 한 과밀화에 원인이 있고, ‘결혼해서 살 집을 제대로 구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등이 확산하면서 출산율도 낮아졌다는 게 핵심이다. 인구가 수도권에 과밀화한 상황에서 일자리 간 격차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체하고 지역 균형 발전이 이뤄져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고갈 위기, ‘모수개혁’부터 서둘러야”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국민연금 개혁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 10명 중 6명이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공론화위 의견 등을 반영해 민주당이 여당 안인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것에 따르기로 잠정 합의했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현재 42%에서 국민의힘은 43%, 민주당은 45%를 올리자고 해 이견이 생겼다. 결국 민주당이 국민의힘 절충안인 44%를 수용하겠다고까지 했는데, 정부와 여당이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며 합의를 폐기해 버렸다.”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께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에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부채를 국고로 해결하고 차라리 연금을 폐지하자는 주장마저 나온다.
“한국은 현재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 수준이다. 만약 국민연금까지 없어져버리면 상당수 노인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질 것이다. 제도를 잘 손보고 성숙시켜 나가야지 없애자고 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기초연금 등 다른 연금제도와 연계하는 방안 등 사회부조의 원칙 하에 지속가능성을 논의해야 한다.”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출 묘수가 있나?
“21대 국회 때 여야 합의를 이룬 모수(母數)개혁부터 진행해야 한다. 물론 모수개혁은 보험료율 등을 건드려야 하는 만큼,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그동안 연금개혁이 번번히 좌절된 이유였지만, 어찌 됐든 21대 때 모수개혁에 대한 공론화를 거쳐 양당이 어느 정도 접근 가능한 안까지 나왔다. 올해 안에 이를 처리하고 내년부터는 국민 동의를 거쳐 퇴직연금을 기금화하는 등의 구조개혁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보건복지위원장으로서 국정감사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내년에는 상임위를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복지위는 국민의 삶과 매우 맞닿아 있는 상임위다. 또 전통적으로 정쟁 위주의 상임위가 아니다. 국민 복지 향상은 몰론 보건의료와 관련해 제도 개선이 시급한 사안 등에 대해서 생산성 있게 운영할 수 있는 상임위라는 생각이다. 그런 차원에서 여당 의원들과도 정쟁보다는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빨리빨리 해결하자고 부탁 드리고 있다. 복지위에서 논의되는 이슈나 심사하는 법안들을 통해 국민 일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그 책임의 무게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