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간질환인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PFIC) 치료 신약 '빌베이(성분명 오데바셉)'가 국내 출시됐다. 간이식 등 고위험 치료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던 PFIC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입센코리아는 17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빌베이'의 건강보험 적용과 함께 국내 공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PFIC는 간에서 담즙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해 간 손상이 누적되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대부분 영유아기에 발병해 심한 가려움증과 황달, 성장 장애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담즙산이 간에 축적되면서 점진적으로 간 기능이 악화되고, 치료하지 않으면 간경화나 간부전으로 진행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은 수면 부족, 학업 중단, 사회적 고립 등 일상 전반에 걸쳐 고통을 겪는다. 전 세계적으로 10만 명당 1~2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졌는데, 국내에선 정확한 환자 수조차 집계되지 않았다.
'빌베이'는 PFIC 증상 치료를 위한 세계 최초의 경구용 약물이다. 장에서 담즙산의 재흡수를 억제해 간 내 담즙산 축적을 줄이고, 가려움증 등 주요 증상을 개선한다. 하루 한번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비침습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치료 옵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빌베이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 입센이 개발해 2021년 미국, 유럽에서 승인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2023년 보건복지부의 '허가·평가 협상 병행 시범사업' 1호 약제로 선정됐고, 이달 급여 적용이 이뤄졌다. 아시아에서 '빌베이'의 건강보험 적용을 결정한 국가는 한국이 처음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급여 평가를 동시에 진행해 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희귀질환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정책과 학계의 노력이 긍정적으로 작동한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의료진들은 희귀 난치성 질환 분야에서 더 많은 치료제가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고홍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빌베이는 PFIC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며 "가려움증 완화 간 수치 개선 등 임상적 반응이 확인되고 있으며, 향후 적응증 확대 가능성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석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간이식은 평균 10% 이상 실패율과 심각한 합병증 위험을 동반하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했던 치료법"이라며 "빌베이는 간 이식 없이 환자를 지켜낼 수 있는 토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지현 경상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소화기영양학회 역시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내 희귀 간질환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며 "빌베이 도입은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새로운 치료의 지평을 연 뜻좋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빌베이는 최근 PFIC 외에도 알라질 증후군(Alagille Syndrome)에 대해서도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알라질 증후군은 간 외에도 심장, 안면, 척추 등 다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 희귀질환으로, 치료 접근성이 매우 제한적이다. 입센코리아는 해당 적응증에 대한 국내 허가 및 급여 확대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양미선 입센코리아 대표는 "희귀 간질환은 질환 자체의 복잡성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 부족, 치료 접근성의 제약 등 다층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다"며 "입센은 치료제 공급을 넘어, 환자들이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제도적·사회적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