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에너지의 중요성을 크게 체감하고 있다. 전기를 쓰고, 난방을 하고, 자동차를 움직이는 모든 활동의 뿌리에는 에너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전히 에너지의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국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칠수록, 우리의 가계와 산업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의존이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에도 직결된다는 점이다. 전 세계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글로벌 기업들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다. 이런 국제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가 과거 관행적 방식에 머무른다면, 단지 에너지를 비싸게 사 오는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히 에너지를 값싸게 들여오는 수준을 넘어,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힘, 즉 에너지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산업과 경제의 기초 체력을 지키고, 미래 세대의 삶을 보장하는 요체다.
에너지 주권을 세우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다양한 에너지원의 확보와 생태계 조성이고, 둘째는 이를 운영할 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기술이 있더라도 이를 설계하고 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에너지 생태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먼저, 에너지 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미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 목표로 선언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수소 경제를 육성하고,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를 보급하며, 분산형 전원의 확대도 추진 중이다.
이어, 에너지 산업 생태계 조성이다. 에너지 산업은 발전소 하나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계통 운영, 저장장치 관리, 효율 개선, 안전 관리, 데이터 활용 등 수많은 분야가 긴밀히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기업들의 RE100 참여가 확산되면서 에너지 거래, 탄소 회계, 효율 진단과 같은 새로운 전문 영역의 수요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결국 설비와 기술, 제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에너지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국가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 인력 양성 체계 강화가 핵심이다. 앞서 말했듯, 에너지 생태계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전력 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전문가, 태양광·풍력 발전을 설계·시공·관리할 기술자, 수소의 생산·저장·운송을 안전하게 다룰 전문 인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무리 큰 투자를 해도 이를 운용할 숙련 인력이 없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직업교육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대학이 연구 중심의 인재를 양성한다면, 공공직업교육기관은 현장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실무형 기술 인력을 길러낸다. 예컨대 태양광 발전소 유지·보수 전문가, 에너지저장장치(ESS) 운영 엔지니어, 수소 설비 안전관리자,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공·운영 인력 등은 체계적인 직업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숙련될 수 있다. 또한 중장년층의 재교육, 청년층의 새로운 진로 탐색 등 다양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연한 플랫폼이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공공직업교육 시스템을 선도하는 한국폴리텍대학은 이미 전국 32개 캠퍼스에서 신재생에너지 및 ESS, 스마트그린전기시스템 등 다양한 에너지 관련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이달 에너지산업 융복합 단지인 광주·전남 지역에 '전력기술교육원'을 개원해, 전력 생산부터 사용까지 전 공정을 아우르는 융합형 교육훈련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는 특정 지역 산업 수요와 연계된 선도형·개방형 직업교육 모델로,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할 중요한 모델이다.
이러한 교육기관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단순한 이론 교육을 넘어 발전소, 충전소, 공장과 연계된 실습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교육 과정은 국가 자격과 직결되어야 하며, 수료 후 곧바로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청정수소 인증제, 탄소배출권 거래제, 분산에너지 특별법 등 정부 정책 변화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개편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주권국가는 스스로 에너지를 확보하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일 것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에너지 주권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사람이다. 기술을 배우고,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 곧 에너지 생태계의 근간을 다지는 일이다.
다가올 시대, 에너지 자립과 주권을 지키는 힘은 자원뿐만 아니라, 그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국민의 역량에서 나온다. 에너지 생태계를 튼튼히 하고, 그 속을 채워 나갈 인재를 키우는 일. 이것이 곧 대한민국이 진정한 에너지 주권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철수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필자〉이철수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이사장은 이화여자대 법과대학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고, 서울대 법과대학 및 법학전문대학원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처장, 평의원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법학회 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노동정책 입안과 사회적 대화에도 적극 활동해온 노동법 및 노사관계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현재는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으로서 노동시장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전 국민의 전 생애에 걸친 수요자 중심 평생직업교육 모델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