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의 더클래식 in 유럽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3시간쯤 후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음악가들은 보통 공연 전에 인터뷰를 잡지 않는다. 하지만 일정이 유난히 빼곡한 연주자는 예외일 수 있다.

한 달 전 만 서른이 된 양인모가 런던의 사우스 켄싱턴에 있는 카페에 나타났다. 어깨에는 보통 사이즈보다 조금 커 보이는 악기 케이스를 걸고 있었다. 런던에 약한 비가 내리던 8월 28일, 그는 클래식 음악계 최대의 축제로 꼽히는 BBC 프롬스에 데뷔할 참이었다.
“리허설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조금 늦었어요. 죄송해요.”
공연 당일의 긴장감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악기를 의자에 내려놓는 태도가 조심스럽다.
그 악기군요. 축하해요.
천운이었죠.
얼굴을 환히 밝히며 바이올린을 바라본다. 양인모는 지난 6월 말 런던에서 이 악기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두 달 만인 이날 공식적으로 처음 무대에 들고 올라간다. “첫날 소리 한 번 내보고 바로 알았어요. 완전히 다른 악기라는 걸요.”
양인모의 새 바이올린은 1743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됐다. 발표된 평가 가치는 2000만 달러, 즉 278억원 정도. 지금 앉아있는 런던 한복판의 건물 몇 채 값이다.
그가 카페인 없는 차를 여유롭게 잔에 따르며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받았어요. ‘정말 좋은 악기를 구했다. 마음에 들면 쓰게 해주겠다’.”
장난스러운 얼굴이 되더니, 한마디를 덧붙인다. “악기를 구입하고서, 그러니까 잔금을 이체하자마자 저에게 연락한 거라고 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