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농업경영체 등록 여부가 농림사업 등의 대상을 판가름하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그렇다 보니 정책 혜택을 받기 위해 일단 농업경영체에 등록하고 보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농업경영체를 유형별로 나눠 혜택을 달리 제공하고, 그에 따라 책임도 차등 부과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농업을 산업으로 영위하거나 미래농업에 중요한 역할을 할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해 농정 효율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대표 사례는 일본으로, 우선 농업경영체를 다양하게 구분하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은 농가의 다양한 경영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2005년 농업경영체 제도를 도입했다. 3000㎡(900평) 이상을 경작하거나 농작물 판매액 연간 50만엔(약 455만원) 이상 수준으로 경지를 경작하면 농업경영체로 인정한다. 노지채소는 1500㎡(450평), 과수는 1000㎡(300평), 돼지는 15마리 등이 기준이다. 1000㎡(300평) 이상 경작하거나 연간 농작물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이면 농업경영체에 등록할 수 있는 우리보다 3배 이상 문턱이 높다.
일본 농업경영체는 가족경영체와 조직경영체로 구분되고, 조직경영체는 다시 법인경영체와 비법인경영체로 나뉜다. 법인을 제외한 농업경영체는 소득 원천 비중과 나이, 농업 종사일수 등을 기준으로 주업경영체·준주업경영체·부업적경영체로 분류된다. 가령 주업경영체는 1년에 60일 이상 자영농업에 종사하는 65세 미만 세대원이 있으면서 소득의 절반 이상이 농업소득이어야 한다.
주목할 점은 이런 구분에 따라 지원을 차등화한 것이다. 일본은 농업경영체 중 5년 단위 농업경영개선계획을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 인정받은 ‘인정농업인’에게 각종 혜택을 집중한다. ‘농업경영 기반강화 준비금’ ‘아그리비즈니스 투자 육성 보조금’ 등 각종 보조금과 장기 저리 융자, 보험료가 전액 공제 대상인 ‘농업자연금’과 세제 혜택을 인정농업인을 포함한 후계농업인에게 제공한다. 그 결과 일본에선 농업경영체수가 감소하는 가운데서도 인정농업인은 20만명 초반대에서 유지되고 있다.
미국은 농정 지원 대상을 분명히 파악하기 위해 농무부(USDA)가 농장식별번호를 부여한다. 번호를 받으면 농업대출·농작물보험 등 다양한 농업정책을 통해 지원받고 농업판매세도 면제받을 수 있다. 다만 취미농은 식별번호가 있어도 세제 혜택에서 제외된다.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가격손실보상제도(PLC) 등 직불 형태의 농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식별번호만으로는 안되고 ‘적극적 농업 참여(AEF·Actively Engaged in Farming)’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AEF는 개인당 연간 1000시간 이상 또는 농업경영에 필요한 시간의 50% 이상 노동력을 투입할 것 등을 요구한다.
혜택과 함께 책임도 차등 부과하는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의 경우 인정농업인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 중 ‘농업경영 기반강화 준비금’ ‘농업자연금’ 및 세제 특례는 ‘청색신고’ 요건을 추가로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일본에선 소득세를 신고하는 방법이 청색신고와 백색신고 두가지인데, 청색신고는 복식부기 원리에 따라 소득 관련 장부를 작성·보관하고, 그 결과를 국세청에 신고하는 등 백색신고에 견줘 절차가 복잡하다.
독일은 조세 관련 의무사항 이행, 농업회의소 가입 여부 등에 따라 농업경영체에 대한 혜택을 차등화한다. 이때 ‘조세법’상 농업경영체로 인정받으려면 농업 관련 4대보험에 가입하고 세무서에 사업자 신고를 하는 등의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김한호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도 농업경영체 재정의 논의가 한창인데 미래농업을 이끌 농민에게 정책적 혜택을 집중하는 방향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일본과 유럽 등 해외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