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한 동료 교수들과 회식을 가졌다. 매 연말에 모임을 했는데, 지난해 12월은 도저히 송년회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미뤘다가 신년회로 대체한 것이다. 으레 그렇듯 시국 얘기를 나눴다. 예상할 수 있듯 윤석열 대통령과 계엄 이후 여야 행태에 대한 성토로 시작했다. 비분강개가 잦아들면서 조기 대선 얘기로 이어졌는데, 민주당이 집권할 것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었다.
통상의 모임이라면 그 정도에서 시국 얘기는 마무리하고 다른 주제로, 이를테면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옮겨 갔을 것이다. 하지만 행정·정책 학자들 모임인 탓에 주제 전환 대신 민주당 집권 이후의 전망으로 이어졌다. 물론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자질과 능력에 관한 품평도 나왔다(누군지는 굳이 밝힐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길어지면 서로 불편할 수 있는 주제라서 짧게 마무리하고 민주당의 정책역량에 관한 얘기에 집중했다. 고리타분한 선생들답게 이 얘기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때 나왔던 얘기 중 하나를 꺼내보자. 몇달 전에 있었던 민주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동의 건이다.
진보 성향인 A교수는 다소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표를 의식해서 원칙과 대의를 저버린 짓인데 이는 악수(惡手)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 그 기대에 부응할 때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좀 더 현실적인 B교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다수 국민(주식투자자)이 도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게다가 찬성 측은 고작 소수의 학자, 시민단체, 정치인만인 상황에서) 여당은 폐지를 결정했는데 야당만 반대하긴 어렵지 않았겠느냐, 만일 그랬다면 작금의 형편없는 주식 장에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논지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문제를 검토해본 적이 있다는 C교수의 얘기였다.
보수인 국민의힘 개혁 의지 낮아
“금투세 폐지 비판의 핵심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저버렸다는 것이지요. 단순화하면 맞는 말이긴 한데 실제는 그보다 복잡합니다.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애초 누가 왜 금투세를 도입하자고 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처음 이를 주장한 건 조세 정의를 내세운 진보 진영이 아니에요. 증권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금융투자협회가 먼저 제안했죠.
왜 그랬을까요? 주식 관련 세제는 두 유형이 있어요. 하나는 주식으로 번 돈에 부과하는 것인데 이게 금투세이지요. 또 하나는 주식 거래(매도)에 부과하는 것으로 증권거래세라고 합니다. 우리는 소득이 아니라 거래에 부과하는 체계를 갖고 있었어요. 주식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면 세금이 없을 때보다 거래 빈도가 낮아지겠지요. 증권사들은 거래가 많을수록 중개 수익이 많아져요. 당연히 증권거래세를 싫어하지요. 그래서 거래세를 낮추고 소득세를 도입하자고 한 것이고요.
증권사 요청대로 금투세 도입을 추진하면서 증권거래세는 줄였어요. 주식 매도에 부과하는 세율이 2019년까지는 0.25%였는데 계속 낮아져서 올해는 0.15%입니다. 이 0.15%는 엄밀히 따지면 농어촌특별세이고 증권거래세 자체는 아예 폐지되었어요. 결국 거래세 폐지(혹은 축소)는 예정대로 하면서 소득세 도입만 철회한 것이지요. 소득세와 거래세 중 뭐가 맞는지는 정답이 없고,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요. 우리의 단타매매 비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높습니다. 하루에도 몇시간씩 스마트폰으로 주식만 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저는 증권거래세는 꼭 필요하다고 봐요. 예전 대학 다닐 때, 투기는 나쁘지만 투자는 바람직하다는 것, 둘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매매 빈도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요. 투자자는 매수한 주식을 오래 보유하지만 투기꾼은 단타매매한다는 것이지요. 비트코인에 올인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요즘, 주식 거래 목적이 투자냐 투기냐를 가르는 것은 무의미하겠지요. 하지만 지나친 단타매매는 급격한 주가 변동을 초래하므로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한데, 그 수단이 증권거래세예요.
개혁 의제 고민하는 민주당 되길
금투세 폐지로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일까요? 당연히 증권사는 이득, 거래 빈도 많은 기관 및 개인 투자자도 이득. 반면 늘어난 세금은 없고 줄어든 세금만 있으니 국고는 부실해졌어요. 민주당의 금투세 폐지 동의 자체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문제는 거기서 멈춘 것이지요. 정책을 수정하려면 정책의 존재 이유, 목적, 상황, 이해관계자 등 제반 사항을 모두 따져본 후에 종합적인 해법을 고민하고 차근차근 실천해 갔어야지요.”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야당인 민주당을 질책하느냐는 반론이 나왔다. 거래세만 축소하고 금투세는 폐지한 것은 정부(여당)가 한 일이니 그쪽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C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책임 소재를 따지면 여당이 더 잘못했지요. 그런데 우린 지금 민주당의 정책역량을 논하는 거잖아요. 물론 국민의힘 정책역량도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정책역량은 민주당에서 훨씬 중요해요. 국민의힘은 보수라서 개혁 의지가 낮아요. 그래서 집권해도 관료 중심으로 정책이 만들어집니다. 민주당은 다르잖아요. 관료는 안정을 중시하기에 개혁을 주도할 수 없어요. 개혁은 집권당이 얼개를 짜고 관료가 속을 채움으로써 완성됩니다. 과거 민주당은 관료의 저항 때문에 개혁이 좌절되었다는 말을 자주 했지요. 이는 당의 정책역량이 낮았음을 반증합니다. 정책역량이 높으면 방향이 올바르고 얼개가 단단합니다. 그러면 관료들도 충실하게 속을 채웁니다.
이번 정권은 연금·의료·노동·교육 개혁 이루겠단 말만 하곤 진전이 없던 탓에 다음 정권 몫이 되었지요. 뿐만 아닙니다. 인공지능(AI) 혁명부터 양극화 해소까지 다뤄야 할 개혁 의제가 산더미예요. 지난 민주당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 안 하려면 정책역량 키우는 게 정말 필요합니다.”
회식 있던 날 아침, 나는 민주당의 민생경제와 혁신성장 포럼에서 연금개혁에 관한 발표를 했었다. 매우 이른 시각이었음에도 국회의원들이 여럿 참석해서 듣고 질문했다. 어수선한 시국에도 열심히 정책 공부하는 모습에 솔직히 감탄했다. 이런 열의가 당 전반으로 확산되어 높은 정책역량을 지닌 정당이 되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