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무더기 강등···석유화학·건설·유통업 부진

2025-01-09

※대한민국보다 대한민국 기업이 더 유명한 세상입니다. 어느새 수 십조원을 굴리고 수 만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밖에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상영의 ‘기업본색’은 기업의 딱딱한 보도자료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공시자료의 수많은 숫자 안에 가려진 진실을 추적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지난해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됐다. 일부 신용평가사의 경우에는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의 숫자가 올라간 기업의 약 두 배를 웃돌았다. 지난해 석유화학·건설업 부진 장기화에 경기 위축으로 소비심리마저 얼어붙으면서 유통업도 부진했기 때문이다. 경기 부진이 길어지는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탄핵 정국 장기화 등 국내외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올해 경제 여건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10일 한국기업평가(한기평)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등급이 낮아진 회사는 28개사로, 상승한 기업(14개사)보다 두 배 많았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신용등급 하향(23개사)이 상향(10개사)보다 두 배 넘게 많았다.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만 신용등급 하향(19개사)이 상향(16개사)을 소폭 웃돌았다. 이번 집계에서 장·단기 신용등급이 모두 변동된 경우는 1개로 반영했다.

기업의 신용도가 떨어지면 자금조달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신용도 저하→자금난 심화→신용도 추가 하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업종별로 보면 석유화학 기업들 다수가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나신평은 실적이 부진하거나 대규모 투자자금 소요 계획으로 재무 부담이 확대될 것이라는 이유로 한화토탈에너지스, SKPIC글로벌, 효성화학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한신평도 여천NCC와 효성화학을, 한기평은 여천NCC와 한화토탈에너지스의 신용등급을 각각 하향 조정했다.

최근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주요국의 석유화학 설비 증설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발돋움한 중국에 더해, 최근에는 중동 산유국도 원유의 안정적인 소비처로 석유화학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는 2028년에는 공급 과잉 규모가 국내 석유화학 설비의 5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최근 고부가·친환경 소재에 집중하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사업재편이 어려운 만큼 기업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으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신평사들은 건설사 신용등급도 잇달아 낮췄다. 건설업체는 공사비 상승에 분양 실적 저하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공사비는 약 30% 올랐다. 최근 3년간 미분양 물량도 약 5배 뛰었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방과 장기 미착공 사업장은 PF 우발채무 부담도 떠안게 됐다. 한신평은 이런 이유로 신세계건설, GS건설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나신평은 인천 검단아파트 붕괴사고 발생 등으로 GS건설을, 한기평은 신세계건설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주요 유통기업도 경영난으로 신용등급이 낮아졌다. 과중한 가계부채와 금융비용 부담 등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된 데다 온라인으로 유통 채널이 빠르게 변화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3대 신평사는 이런 이유로 이마트 신용등급을 낮췄다. 롯데하이마트도 가전제품의 온라인 구매 확대와 오프라인 시장 내 경쟁 심화로 나신평과 한기평에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그룹별로도 온도 차가 뚜렷했다. 한신평이 신용등급이나 전망을 어둡게 본 기업은 롯데 계열사(6개)가 가장 많았다. 롯데그룹은 주력 산업이 유통과 화학 업종인 만큼 타격이 불가피했다. 이어 SK(4개), 신세계(2개) 순으로 신용등급(전망 포함)이 떨어졌다. 실적 호조로 신용 전망이 밝아진 현대차(4개), HD현대(2개)와 대조적이다. 나신평도 롯데그룹 계열사 3곳의 신용등급이나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올해도 전망은 어둡다. 한기평은 올해에도 석유화학과 건설업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선방했던 자동차도 미국의 보편과세 부과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등급 전망을 ‘중립’으로 낮췄다. 한기평은 “내수와 건설투자 부진, 트럼프 행정부 정책 리스크, 중국과의 경쟁 심화 등 대내외 불안요인을 고려하면 다수 산업의 업황이 비우호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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