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영역’과 ‘인식의 영역’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인식의 영역’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현장을 다수의 국민들은 두 눈으로 확인했었다. 이것이 법적으로 불기소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은 틀린 법적 판단은 아닐 수 있지만, 국민의 ‘인식의 영역’에서는 불기소 처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역시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이런 검찰의 판단 역시 국민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바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시절 명태균 씨와 통화했던 녹취가 공개됐다는 것인데, 이번 녹취에서 드러난 사안만 놓고 보면, 탄핵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아무리 당선인 시절이었다고 해도 당선인의 이런 발언을 ‘좋게 말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대통령은 명태균 씨와의 관계를 경선 이후에는 끊었다고 말했는데, 통화 시점이 대통령 취임 바로 전날인 2022년 5월 9일이었다고 한다면, 국민들은 이를 두고도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통령실은, 명태균 씨와의 관계를 대통령이 “매몰차게 끊었다고 한다. (명 씨가) 경선룰에 간섭하니까 ‘앞으로 나한테도, 집사람한테도 전화하지 마’하고 딱 끊은 것”이라고 전하며, 5월 9일 통화는 오랜만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에 공감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아직도 이런 국민의 ‘인식 영역’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통령실은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누구를 공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 개진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인식이 아닌 법적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대통령이 인식의 영역이 아닌 법적 차원의 주장을 반복하면, 국민은 대통령을 점점 더 멀리할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월 1일 발표한 자체 정례 조사(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마침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는데, 중요한 것은 이번 조사에서는 윤 대통령과 명태균 씨 사이의 통화 녹취 파장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녹취 파장이 포함되는 다음번 조사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욱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10% 중반으로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에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상설 특검을 먼저 제시하는 등의 파격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이 위축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통령은 국회 시정 연설에도 불참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대통령은 더욱 고립될 것이고,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외면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조기 대선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진영 간의 대립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