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 대응하는 '미국통' 류진 한경협 회장의 딜레마

2025-04-15

[비즈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국내 경제계가 긴장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옛 전국경제인연합회)에게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류진 한경협 회장이 미국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경협은 국내 정치권과 협력해 ‘팀 코리아’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류진 회장은 한경협 회장인 동시에 풍산그룹 회장이다. 풍산그룹도 관세 정책에 따른 경기 침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류진 회장은 한경협 회장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풍산그룹 회장으로서 실적 우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상법 개정안과 관세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계획은 4월 5일부터 기본관세 10%를 적용하고, 9일부터는 국가별 관세를 시행해 25%로 관세를 올리는 것이었다. 다만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별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으로서는 한시름 놓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관세를 유예했을 뿐, 철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계 시선은 류진 한경협 회장에 집중된다. 류 회장은 2023년 8월 한경협 회장에 취임했고, 올해 2월 연임했다. 한경협이 류 회장을 선임한 이유 중 하나는 폭넓은 해외 인맥이었다. 재계에서는 류 회장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정 역할을 맡아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경협은 류 회장 선임 당시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험, 지식, 네트워크가 탁월한 분으로 새롭게 태어날 한경협이 글로벌 싱크탱크이자 명실상부 글로벌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줄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한경협을 비롯한 경제 6단체는 지난 3월 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만나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관세로 인해 기업 활동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상법 개정안에 반대해왔다. 한덕수 대행은 한경협 등 재계의 요구대로 4월 1일 상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한경협이 관세를 핑계로 상법 개정안 거부를 요구했다고 비판한다. 참여연대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정부와 여당이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의 염원을 외면한 채 다시 지배주주가 전횡을 일삼던 후진적인 기업 거버넌스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철회할 경우 상법 개정안을 거부한 재계의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 한편으로 류진 회장이 관세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면 재계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류 회장으로서는 딜레마에 놓인 셈이다.

류진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지난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는 간단하게 소통할 수 있으니까 편한 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회장은 트럼프 행정부 소속 주요 인사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청 받아 참석했다.

기업이 미국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경협은 단일 기업이 아니라 경제 단체이므로 미국에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국가 대 국가의 협상이므로 한경협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면서도 “그래도 국내 대표 경제 단체인데 미국에 좀 더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한경협은 지난 2월부터 트럼프 대통령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류진 회장은 최근 몇 차례 정치권 인사와 만나 관련 대응책을 논의했다. 한경협은 자체적으로 관세 대응 세미나를 열어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은 4월 3일 ‘트럼프 상호관세,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세미나에서 “미국에서 먼저 조선업 분야 협력 제안이 온 만큼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미국에 잘 알려야 한다”며 “미국 내 싱크탱크 등 미국인의 목소리를 통해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미국 사회에 잘 각인시킬 수 있는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발표한 후 아직까지 특별한 변화는 없는 상태다.

#미-중 싸움에 구리 가격 하락 우려

류진 회장의 또 다른 숙제는 풍산그룹의 실적이다. 류 회장은 풍산그룹 회장이며, 류 회장의 장남 로이스 류 씨는 풍산 미국 법인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풍산그룹 역시 미국 관세 정책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풍산의 주요 사업 중 하나는 구리의 가공·제련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보복 관세를 발표하면서 경기 침체가 우려되자 구리 가격 하락 우려가 나온다. 풍산의 구리 관련 제품 가격은 대부분 구리 가격에 연동된다.

아직까지 구리 가격 하락이 가시화된 것은 아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의 구리 가격은 올해 1월부터 최근까지 1톤(t)당 8000~1만 달러(약 1136만~1420만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구리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김진범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중 관세 협상 여부와 이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로 구리 가격에 대한 불확실성은 잔존한다”며 “무역 분쟁에 따른 중국의 산업 활동 축소 우려 역시 정광 및 정련 구리 공급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최용현 KB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구리 가격 하락에 따른 풍산의 주가 하락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풍산그룹은 일단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풍산그룹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미국 관세에 크게 영향이 없다”며 “추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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