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화장품 산업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 규모는 102억 달러(14조8800억원)로 사상 처음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85억 달러 대비 20.6% 급성장한 결과다. 이 같은 호실적에 K-뷰티가 반도체·조선·자동차에 이어 새로운 수출 효자 상품이 될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독특한 성분과 콘셉트로 중국 등 주로 아시아 시장을 호령했던 과거와 달리, 미국·일본·유럽 등 화장품 주류 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와 대등하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지금이다. 비크닉이 지구촌을 매혹하고 있는 K-뷰티의 현재를 조명하고, 현재의 경쟁력을 만든 원동력을 돌아본다. 또한 지속 가능한 흥행을 위해 K-뷰티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지도 살펴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②61년 전 에티오피아로 첫 수출… K-뷰티 헤리티지 만든 이 회사 [비크닉]
③K-뷰티는 카테고리 킬러?...‘넥스트-쿠션’ 나오려면
K-푸드, K-패션, 그리고 K-뷰티. 최근 해외에서 몸값을 올리고 있는 한국산 소비재의 흥행 배경에는 K-팝이 있다. 변화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가속했다. 점차 영향력을 높여가던 음악·드라마·영화 등 K-문화는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OTT를 중심으로 글로벌 주류 문화로 떠오른다. 기존에는 마니아만 즐겼던 K-팝의 저변이 대중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문화에 대한 호감은 자연히 해당 문화권이 생산하는 소비재로 퍼져나간다. 김밥·불닭 볶음면으로 대표되는 K-푸드가 그렇고, 인기 아이돌이 바르고 입는 K-패션·뷰티가 그렇다. 이른바 ‘소비재 한류’다. 나카무라 히데노리 아모레퍼시픽 일본법인 라네즈 브랜드 매니저는 “일본에서는 K-컬쳐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확고한 문화적 장르로 자리 잡았다”며 “자연스레 젊은 세대 사이에서 K-뷰티 사용자가 점차 늘고 있고 이런 현상이 일본의 기성 세대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카테고리 킬러’형 혁신 제품
K-뷰티 부상의 배경으로 K-팝의 흥행이 꼽히지만, 물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주목할 것은 한국산 화장품 자체의 경쟁력이다. 특히 기존에 없던 카테고리를 만드는 남다른 ‘혁신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8년 아모레퍼시픽의 아이오페에서 출시된 ‘에어쿠션’이다. 액상 형태의 파운데이션을 스펀지에 스며들게 한 후 콤팩트 케이스 안에 넣은 뒤, 이를 역시 밀도가 있는 스펀지(쿠션)로 찍어 바르는 형태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카테고리의 피부 화장 제품이다. 피부 상태를 자주 확인하고 덧바르는 소비자들의 필요를 정확히 겨냥, 출시 2년 만에 연간 50만개, 2015년에는 3300만개가 팔리면서 1초에 1개씩 팔리는 아이템이 됐다. 샤넬·에스티로더·로레알 등 글로벌 기업들도 다퉈 ‘미투’ 제품을 냈고, 피부 메이크업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마스크 팩을 변형한 패드 타입 화장품, 스틱 형태의 자외선 차단제 등 새로운 카테고리이거나, 기존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소구점과 사용법을 가진 참신한 제품들을 연이어 만들어냈다. 최근 주목받는, 피부과 시술을 본뜬 미세 침 성분의 기초 화장품 역시 K-뷰티의 혁신성을 나타내는 제품이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브랜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성분을 활용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쌀이나 어성초 등 천연 성분을 순하게 만들고 피부에 침투시키는 기술이 독보적이다. 화장품 제조기업 한국 콜마 관계자는 “한국 화장품은 재미있으면서 효과도 뛰어나다는 소비자 인식이 형성됐고, 이런 혁신적 제품 개발이 한국 브랜드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화장품 브랜드만 3~4만개…. 극심한 경쟁이 스타 만든다
혁신성과 함께 K-뷰티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꼽는 것은 ‘가성비’다. 비슷한 효능을 지닌 글로벌 브랜드보다 접근성이 높은 가격은 폭넓은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최대 강점이기도 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의 배경으로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화장품 제조 인프라가 꼽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업체만 8000여개, 브랜드는 3만개를 훌쩍 넘어 4만개에 육박한다. 약간의 브랜드 기획력과 어느 정도의 자본만 있다면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얘기다. 물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품질은 기본,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K-뷰티 전문 유통업체 실리콘투 관계자는 “높은 품질과 신선함, 낮은 가격의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는 게 K-뷰티의 특징”이라며 “매달 매출 순위 교체가 잦을 정도로 흐름이 빠르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품질이든 가격이든 계속해서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눈높이 높은 소비자도 화장품 강국의 조건이다. 강승현 코스맥스 비티아이 전무는 “그 어떤 나라보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의 구체적인 요구들을 만족하게 하려면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들이) 새로운 성분이나 제형에 과감히 도전하고,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K-뷰티의 경쟁력이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SNS 타고 확산한 K-뷰티 콘텐트, 과제는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SNS는 K-뷰티 트렌드 확산을 주도한 일등공신이다. 2023년 기준 틱톡에서 해시태그(#) ‘Korean skin care’ 검색량은 전년 대비 180% 증가했고, ‘kbeauty’ 관련 해시태그도 폭발적 조회 수를 기록했다. 실제로 다수의 K-뷰티 브랜드는 SNS 콘텐트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해외 인플루언서와 직접 소통하며 바이럴 영상을 만들거나, 리뷰 이벤트를 여는 식이다. 실제로 한 K-뷰티 브랜드의 경우 틱톡에서 한 인플루언서가 소개한 제품 리뷰 영상이 1000만 뷰 이상을 기록, 아마존 미국의 랭킹과 매출이 크게 오르기도 했다. 강지웅 아모레퍼시픽 미국법인 전략팀장은 “인스타그램·틱톡·유튜브와 같은 채널들은 K-뷰티 제품의 탁월한 품질과 혁신적인 사용법을 전 세계에 알리는 핵심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K-뷰티의 글로벌 흥행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과제도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탄탄한 브랜딩을 꼽았다. K-뷰티 트렌드가 뜨거운 만큼 K-뷰티의 후광 효과로 반짝 성공할 수 있지만, 지속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자체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이밖에 브랜드마다 한두 개의 간판 상품으로 매출이 편중된 점, 온라인 유통망보다 오프라인 유통망은 아직 탄탄하게 구축하지 못한 점 등이 과제로 꼽혔다. 한 K-뷰티 브랜드 대표는 “미국에서 유통되는 뷰티·퍼스널 케어 제품의 70% 가까이가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며 “어려워도 오프라인까지 진입해 소비자들을 효과적으로 만나고, 오프라인 매장을 점유하고 있는 기존 브랜드와 경쟁하면서 대세 브랜드라는 인식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