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연구

1995년 11월 초겨울에 접어든 어느 날, 71세의 중국 고위 관료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찾았다. 그의 시선은 축구장 6개 크기의 100만t급 3번 도크로 향했다. 호주·덴마크 선사에서 수주한 1500TEU급 컨테이너선 2척, 4200TEU급 컨테이너선 2척과 벌크선 1척, 유조선 1척 등 총 6척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꼼꼼히 살펴본 그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페이창방!(非常棒·훌륭합니다!)”
그의 이름은 장쩌민(江澤民, 1926~2022). 중국 5대 국가주석이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계승해 현재 중국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다. 상하이교통대 전기기계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울산조선소에 30분간 머무는 동안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중국 관료는 현대중공업 측 답변을 현장에서 받아 적느라 바빴다.
장 주석은 11월 13~17일 4박5일 일정으로 방한해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순으로 방문했다. 중국 1인자의 첫 방한. 중국은 이례적인 부탁을 했다.

한이헌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이다. 이후 장 주석은 중국으로 돌아가 “서둘러 한국형 발전모델을 배워라”는 지침을 내렸다. 40여 년 전 전쟁을 치른 한국의 천지개벽한 모습에 강한 동기부여를 느꼈으리라. 일본 아시히신문은 베이징발 보도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민간 경제활동을 정부가 통제하는 한국의 경제시스템, 재벌 기업에 장 주석의 관심이 컸다. 중국 외교부와 대외경제협력부는 한국의 경제부처에 60년대부터 실시한 경제개발계획을 문의하고 있다.”
그렇게 한국 배우기에 급급하던 중국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지난해 수주량 세계 1위 조선 강국, 항공모함 3척을 보유한 해군 강국으로 환골탈태했다. 중국은 어떻게 한국을 따라잡았을까, 그동안 한국의 조선소들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 중국의 기술굴기
“중국에서는 1달러만 있어도 배를 만들 수 있다.”
한국 조선업계에선 중국 조선업계 실태를 이렇게 진단한다. 농담 같지만 반은 진담이다. 선수금 환급보증(RG) 때문이다. RG는 조선사가 선박건조 중 부도 등으로 문제가 생겨 선박 인도가 불가능할 경우에 대비해 금융회사가 선주에게 선수금을 대신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보증이다.
조선사로선 RG에 가입되지 않으면 수주를 못 하는데, 보통 민간 은행들은 부실화 탓에 RG를 내주는 데 까다롭다. 하지만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가 뒷배다. 국책 은행이 선선히 보증을 서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