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보고 싶다

2025-02-11

얼마 전 칼레에 다녀왔다. 프랑스 서북부에 위치한 칼레는 나의 버킷 리스트에 있는 작은 도시다. 북대서양 연안의 이 도시는 프랑스 여느 소도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를 열심히 찾는다. 이유는 딱 하나, ‘칼레의 시민들’이라는 조각상 때문이다. 로댕의 작품이다.

동상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제 구문에 가깝다. 영국과 프랑스 간 백년 전쟁 당시인 1347년 에드워드 3세의 영국군에 칼레는 포위당한다. 시민들의 영웅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 항복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 왕은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려면 대표자들이 시의 곳간열쇠를 들고 와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6명의 시민 대표가 나섰다. 전체 시민을 살리기 위해 자진해 나선 것이다.

얼마 뒤 로댕은 칼레시의 의뢰를 받고 기념상을 조각했다. 그런데 완성된 조각품을 인수할 당시 큰 소동이 벌어진다. 조각 속 6명 시민대표는 영웅의 얼굴이 아니었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얼굴을 감싸 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방점이 있다. 로댕은 동상에서 초인적인 영웅의 모습보다는 인간의 고통을 재현한 것이다. 진실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형상화했던 것이다.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 동상도 마찬가지. 우리가 아는 용감한 미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죽음의 공포가 일그러진 얼굴에 극명하게 새겨져 있다.

바람 부는 날이면 광화문에 간다. 강북에 사는 즐거움이다. 강북의 거리는 강남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묘한 느낌을 준다. 광화문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지나치게 근엄하다. 나는 그 동상들로부터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한다. 그분들의 영혼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충무공 동상은 더욱 그렇다. 그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보통 한국인은 다 안다. 그러나 얼굴에 그런 모습은 전혀 없다. 위엄뿐이다. 광화문 거리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동상을 보고 싶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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