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문화재 보존의 이유 일깨운 ‘사유의 방’

2025-05-06

2021년 개관 이래 수백만명 발길

고요함이 주는 평화에 위로받아

10월 문 여는 박물관보존과학센터

개점휴업 안 되게 인력 충원 시급

한 달 전쯤 회사 인근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한 발걸음은 자연스레 상설전시관 2층에 마련된 ‘사유의 방’으로 향했다. 방 입구에 적힌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문구에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심호흡하며 들어서자 은근한 공간에서 환한 빛을 발하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반가부좌를 하고 생각하는 불상) 두 점이 눈에 들어와 앉았다.

각각 삼국시대 6세기 후반(높이 81.5㎝)과 7세기 전반(90.8㎝)에 제작된 불상으로 은은한 미소를 띤 표정과 자연스러운 자세, 걸친 옷의 유려한 흐름 등이 섬세하게 조각된 국보다. 1400여년 전 유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마치 부처가 ‘잘 왔네’라고 반겨주는 것 같은. 순간 평온해진 마음으로 명상하면서 잠시나마 부질없는 상념을 떨쳐냈다. 2021년 11월 문을 연 이 방에 국내외 관람객 수백만 명이 들르게 한 힘이 바로 이런 걸까. 최고 인기 전시실로 꼽힐 만하다.

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사유의 방이 생기기 전까진 반가사유상 두 점을 함께 볼 기회가 드물었다. 워낙 귀한 유물이라 한 점씩 교대로 전시하며 보존관리에 힘썼기 때문이다. 8년 전에도 키가 작은 반가사유상의 보관(寶冠)과 왼쪽 발 받침, 오른쪽 어깨 부분의 균열을 접합하고 보강하는 보존처리를 한 바 있다.

지난주 만난 천주현 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박물관에 전시된 1만점가량 유물은 사전에 손상 예방 등의 보존처리를 거쳐 전시하고, 반가사유상 등 국가지정문화유산(국보·보물)은 휴관일마다 꼼꼼히 점검한다”고 했다. 사유의 방이 문화유산 보존관리 역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례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20주년을 맞는 올 10월에 박물관보존과학센터가 개관한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총사업비 528억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3층에 연면적 9196㎡(2782평) 규모로 들어설 센터에는 3차원 스캔 및 디지털 형상 복원실, 유물 재질별 보존처리실, 분석실, 스마트 원격진단실 등 디지털보존과학시스템이 구축된다. 그야말로 과학기술을 활용해 문화재 원형을 되살리고, 적절하게 보존관리하여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발판이다. 경주·전주·부여 등 전국 13개 국립박물관을 관장하고, 국내 국·공립박물관과 해외박물관 한국실 등에 소장된 우리 문화재 보존관리의 주체인 중앙박물관에 보존과학 분야 국가중추기관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어이없는 얘기가 들렸다. 첨단 장비를 갖춘 센터가 문을 열어도 운용할 사람이 턱없이 모자라 제대로 가동될 수 없다는 거다. 보존과학부 기존 학예연구관·연구사 13명 외에 신설될 분석과학부와 디지털복원부에 최소 22명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올해 신규 채용 인원으로 고작 2명만 허용한 탓이다. 중국 고궁문물원(150명), 영국박물관(66명), 프랑스 루브르박물관(150명), 미국 메트로폴리탄(103명) 보존 담당 인력 규모와 비교된다.

가뜩이나 보존과학부 인력이 부족한 중앙박물관 측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중앙박물관 소장품 약 44만점 중 보존처리된 유물도 619점(0.14%)에 그쳤다. 시급성과 중요성을 감안해 보존처리 우선순위로 분류한 A·B등급 유물을 처리하는 데만 94년이 걸린단다.

지역 국립박물관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경주(3명)와 부여(2명) 외 나머지 박물관은 보존인력이 한 명뿐이다. 금속, 흙, 돌, 나무, 종이, 직물 등 다양한 재질의 발굴 유물이 꾸준히 늘어 국립박물관 전체 소장품이 250만점에 달한 상황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다. 문화재 보존과학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과 축적된 경험이 필요한데 20년 넘도록 증원이 안 되면서 문화재 보존·복원 방법을 전수받아야 할 20∼30대 학예연구사도 드물다.

우리 헌법은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제9조)고 했다. 문화유산의 소실과 손상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해이고 현세대는 미래세대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온전하게 전달해야 할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다음 달 출범할 새 정부는 최소한 보존과학센터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소망을 새겨듣길.

이강은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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