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미래의 관세청, AI로 그리다

2025-02-19

1965년 이정문 화백이 그린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그림에는 익숙한 물건이 등장한다. 전기자동차, 소형 전화기, 로봇 청소기. 50년 전 누군가의 상상에 불과했던 것들은 이제 평범하게 일상에 녹아들어 있다. 이처럼 기술은 우리의 삶을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시킨다. 최근 기술 화두의 중심인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생성형 AI, 이미지·음성 인식 등 다양한 AI 기술이 산업과 행정 분야에 도입되며 업무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과거에 컴퓨터가 그러했듯 AI 기술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의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관세청 역시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제한된 행정 인력에 반해 업무량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량 화물 위주의 검사 체계가 운영됐지만 전자상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제는 연간 1억9000만건에 달하는 개별 소액 물품까지 관리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마약, 총기류 등 불법 물품 반입 시도는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불법 물품을 합법적인 제품으로 위장하거나, 물류 경로를 복잡하게 설정해 단속을 회피하는 것이다. 기존 방식만으로는 증가하는 업무량과 복잡해지는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바야흐로 새로운 도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관세청은 과거에도 기술을 활용해 업무 혁신을 이뤄낸 경험이 있다. 바로 '전산화'다. 지난 세기 우리나라 성장의 중심에는 무역이 있었고, 관세청은 이를 담당하는 최일선 정부 기관이었다. 초기 통관 방식은 전적으로 수작업에 의존했다. 기업 및 관세사가 직접 종이서류를 들고 세관을 찾아 신고하고 확인받아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늘어나는 물동량을 신속히 처리할 수 없었다. 무역 확대에는 원활한 수출입 통관이 필수적이었기에 그 지원책으로 업무 프로세스 전산화가 추진됐다.

그 시작은 1974년, 무역통계 자료를 디지털 파일 형식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는 정부 기관 중 가장 먼저 시도한 전산화였다. 1990년대는 전자적인 통관 프로세스를 본격 구축했고, 2000년대 초 마침내 서류 없는 신고가 전면 시행됐다. 수출입신고, 요건 확인, 세금 납부 등 모든 통관 절차가 전산화된 것이다.

과감한 혁신 덕분에 1993년 대비 현재 평균 통관 시간은 2일에서 1시간 30분으로, 화물 처리시간은 23일에서 1.5일로 단축됐다. 이렇게 발전시킨 전자통관시스템은 UNI-PASS라는 브랜드명으로 15개국에 수출되며 한국의 선진 관세행정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처럼 전산화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여 온 관세청은 이제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 또 한 번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AI 기술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한 번에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맹신에 가깝다.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행정 업무가 효율화된 것처럼, AI 역시 관세행정의 보조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도구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관세청은 AI 관세행정 도입을 위한 기반을 충실히 다져왔다. 그 첫 번째가 '데이터'다. 앞서 언급한 전자통관시스템은 수출입·물류 기업 25만개, 정부·금융기관 100여개와 연계돼 있으며, 관세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물품, 사람, 외환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현재도 불법 물품 단속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매년 2억8000만건이 넘는 통관 물품을 처리하고 있다. 이렇게 축적된 정보화 경험과 데이터는 AI 모델 학습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두 번째는 '전문 인력과 조직'이다. AI를 성공적으로 업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역량뿐만 아니라 이를 운용할 전문 인력의 지속적인 교육과 양성이 필수적이다.

관세청은 2017년부터 빅데이터 분석 및 AI 알고리즘 개발이 가능한 미래 인재 145명을 육성했으며, 2021년부터 AI를 전담하는 연구개발장비팀과 빅데이터분석팀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 분석 및 AI 모델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2018년부터 위험관리, 정보분석 분야에 10개의 AI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사람이 일일이 하던 작업을 AI와 협업하면서 업무 정확도와 효율성도 확연히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범화물 및 여행자 선별 업무는 기존에 직원 개인의 노하우에 의존했으나 AI 모델 도입 이후 업체, 물품, 공급망 등 우범 패턴을 통계화해 검사 대상을 선별하고 있다. 그 결과 적발률이 최대 8배 증가했다. 또 위험분석 업무도 AI가 대용량 데이터 간의 연관관계를 자동 분석, 시각화해 보조함에 따라 정보분석 소요 시간이 1시간에서 1분으로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데이터와 인적 자원, 그리고 경험. 관세청은 그간의 노력으로 일군 자원을 바탕으로 AI 기반 관세행정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려보려고 한다. 올해는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통관 관련 회의도 2월과 7월 두 차례 예정돼 있으며 미국, 중국, 일본 등 관세 전문가들이 모두 참석한다. 필자 또한 직접 참여해 AI를 비롯한 다양한 주제로 관세행정 발전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디지털 관세행정에 이어 AI 관세행정 또한 한국이 선도할 수 있도록 배울 점은 배우고 고칠 점은 고치는 기회로 삼겠다.

관세청은 지난 50년간 정보화를 통해 행정 혁신을 이끌어왔다. 이제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적극 활용해 더 효율적인 관세행정을 구축할 때다. AI는 업무를 대신하는 만능 해법이 아니라, 직원들이 보다 중요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도구다. 사용자가 목표와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관세청은 앞으로도 AI 기술을 전략적으로 도입해 업무 혁신과 국민 편의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광효 관세청장 kokwanghyo@korea.kr

〈필자〉고광효 관세청장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광주 대동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행정고시(36회)에 합격해 기재부 조세분석과장, 국제조세협력과장, 재산세제과장, 법인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조세총괄정책관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기재부 세제실은 물론 국세청, 조세심판원 등을 거친 정통 조세 정책관료로 평가 받는다. 윤석열 정부 첫 세제실장으로 임명돼 법인세 인하, 해외 배당 익금불산입 제도, 다주택 중과세제 완화 등 세제 개편을 주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재정위원회 이사로도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2023년 7월 관세청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경제회복과 민생안정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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